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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30. 2023

방송 타게 해 줬더니

엄마 혼자 착각한 거였네

2023. 10. 2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엄마는 왜 내 허락도 안 받고 내 이름을 방송에 보내?"

"어?"

"나한테 먼저 허락을 맡아야지.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게 어딨어?"

"그래? 그런 거였어? 엄만 우리 아들 방송 타게 해 주려고 그랬지."

"앞으로는 나한테 먼저 허락 맡아. 알았지?"

"그래, 알았다."


개인정보에 몹시도 민감한 엄마는 개인정보 보호에 매우도 철저한 아드님을 낳으셨다.

내가 '개인정보보호법' 강의를 들으며 태교 했던가?

생각해 보니, 관련 교육도 참석하고 교육 점수 채우려고 비슷한 강의를 골라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너 엄마한테 너무 박하게 대하는 거 아냐?

어제는 개인정보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다고 잘했다고 칭찬했더니 오늘은 이 엄마한테까지 예민하게 구네.


"우리 아들, 쉿! 이따가 엄마가 보낸 사연 나올지도 몰라."

"또 사연 보냈어?"

"응, 엄마가 우리 아들 얘기 좀 했지."

"또 무슨 얘길 한 거야? 엄마도 참."

역시 내 직감은 엇나가지 않았다.

왠지 소개될 것 같은 그 시각에 내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브닝 스페셜에서 영작 퀴즈를 내고 맞는 표현을 청취자에게 받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영작은커녕 어설프게나마 핵심 영단어 하나도 입력하지 않았다 물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살포시 사연에 담아 반디로 보냈다.

그 와중에 어떤 단어가 과연 콩글리시에 해당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는 사연을 살짝 추가했음은 물론이다.


"우리 아들 이름이 나오네. 잘 들어 봐. 이거 엄마가 보낸 사연이야."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역시 엄마 밖에 없지?

"엄마 말이 맞지? 엄마가 소개될 거라고 했잖아."

세상 호들갑스럽게 난생처음 방송을 탄 사람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사연 소개가 잘 되는 편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끊지 못하고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아들 표정이 돌변했다.

"근데 엄마! 왜 엄마 마음대로 해?"

"뭘?"

"내 이름을 왜 그렇게 방송에 나오게 하는 거야?"

"어?"

"이렇게 방송에 내 이름을 공개하면 어떡해?"

"그래서 싫어?"

"내 허락도 없이 이럴 수 있어?"

"아,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거였어?"

"당연하지!"

"알았다."

"그것도 개인정보라고. 엄마는 날마다 나한테 개인 정보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야."

진도를 더 나갔다가는 당장 내게 개인정보보호법령을 들이밀 것 같았다.

아이고 이것아, 그렇게 너무 곧이곧대로면 앞으로 살기 힘들어.

"자고로 개인정보란, 생존하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번호등에 의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용이하게 결합하여 식별할 수 있는 것을 포함)를 일컫는 말인데, 솔직히 달랑 이름이 소개되었다고 해서 누가 너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전국에 있을까? 엄마가 민원실에 있을 때 이름이 특이해서 전국에서 몇 명 없을 것 같은 이름들도 동명이인이 넘쳐나기만 하더라. 성은 다르더라도 이름이 너랑 같은 사람이 분명히 수 십 명은 있을 거야. 누나 봐봐. 옛날에 전입신고 하러 온 사람이 전입자란에 딸 이름을 쓰는데 누나랑 이름이 똑같아서 엄마가 깜짝 놀랐다고 했지? 게다가 나이도 같고 더더더 게다가 우리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이잖아. 일부러 엄마가 기억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나. 그리고 또 네 친구 중에도 누나랑 같은 이름인 친구도 있잖아. 이 좁은 동네에서도 누나랑 같은 이름이 엄마가 아는 선에서만 세 명이나 돼. 뿐이야? OO 형 친구 중에도 누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다고 했잖아. 세상에 같은 이름들은 이렇게 흔해. 봐! 벌써 네 명이잖아. 그러니 네 개인정보가 샜다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동명이인은 많단다, 아들아."

라고 본전도 못 찾을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들아, 넌 꼭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니?

우리 사이에 그래야만 하는 거라니?

그래, 가족 사이에는 보증도 안서야 한다고는 하더라만, 네 명의로 반디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그냥 네 이름을 딱 한 번 입력했을 뿐인데, 그것도 성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름만 입력했을 뿐인데, 좋은 마음으로 한 일치고는 그 과보가 너무 크구나.

나중에 너한테 영어 퀴즈쇼에 한번 참여해 보라고 적극 권장할 계획이었는데 다 부질없는 바람이구나.

전국에 너랑 같은 이름이 한 두 명이 아닐 텐데, 그리고 예전엔 방송에서 생일 축하 사연에 이름 나오면 세상 좋아하며 펄쩍 뛰더니 이젠 정색을 하며 펄쩍 뛰는구나.

그러다가 넌 여기에서도 네가 등장할 예정일 때마다 먼저 자가 검열을 하겠다고 나올 아이로구나.

물론 네 말도 일리는 있지.

개인정보는 소중하지.

그렇지만, 우리끼리 너무 팍팍하게 그러진 말자, 응? 그동안 네가 여기에 출연한 횟수가 얼만데, 이러다 너 출연료 달라고 하겠다,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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