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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2. 2023

이번 생에는 못 낳아

알 낳지 못하는 계들의...

2023. 11.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것들, 또 얼른 없애야 쓰겄다."


엄마는 의미심장하게 선언하셨다.

저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분위기 파악을 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살벌해졌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엄마 심기를 건드리셨나 그래?


"그래도 올해는 할머니 집(엄밀히 따지자면 친정집) 닭들 삼복더위 무사히 다 지나갔네."

어느 초가을날, 작년과 달리 마트에서 구입한 닭을 사서 닭백숙을 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진짜네, 엄마. 그럼 아직도 닭이 그대로야?"

유난히 '닭과 닭고기를 좋아하는 딸'이 관심을 보였다.

"응. 아직까지는 무사한 것 같던데? 올해 부화한 닭들은 다 그대로 있는 것 같더라."

닭 머리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 없으니 봄부터 그때까지 닭들은 안녕하다고 믿고 있었다.

"요즘은 닭들이 하루에 알을 6개씩 낳기 시작했대.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우와. 그렇게나 많이?"

"응, 덕분에 우리가 잘 먹는다, 그렇지?"

"정말 그렇네. 닭 보고 싶다. 먹고 싶기도 하고."

딸은,

그러니까,

가끔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보다 닭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초복과 중복과 말복, 자그마치 삼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무렵까지 친정집 여 남은 마리의 닭들이 아직 무사할 때가 있었다.

매년 여름이면 한 두 마리씩 친정에서 닭을 공수해 와 우리의 피와 살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감감무소식이었다.

보통은 삼복 중 하루라도 그냥 보낼 부모님이 아니신데 말이다.

딸보다, 사위보다,

"우리 애기들 먹여라."

이러시면서 여름이면 한 두 마리는 우리에게 보내 주셨었다.

설마 우리만 쏙 빼고 오빠네랑 해치우신 건 아니겠지?

평소 오빠네 처가까지 챙겨 주시는 부모님이다.

그래서 닭을 한 번 잡을 때 기본이 서 너 마리가 되곤 한다.

우리 몫으로 두 마리를 주고 오빠네에게 한 마리를 줬으면 줬지 우리를 나 몰라라 할 엄마가 아니었다.

아니, 오빠네를 안 줬으면 안 줬지 우리를 모른 척할 엄마가 아니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올해는 친정집 닭맛을 못 보고 넘어가나 하고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려는 때였다.

"와서 닭 가져가라. 내가 다 고아놨다. 갖고 가서 먹기만 해라. 잘 고아졌더라."

소리소문 없이 닭 한 마리가 기어이 희생됐다.

처음엔 당연히 암탉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떤 놈이 걸린 거지?

"저놈들, 알도 못 낳는 거 다 잡아서 없애야제. 놔두면 시끄럽기만 하고. 한 마리만 놔두고 언제 또 잡어야쓰겄다. O 서방 많이 줘라."

살벌한 장모님 사위 사랑, 그 사랑이 넘칠수록 친정집 수탉은 잦은 주기로 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수탉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알을 못 낳는다는 것뿐,

그건 숙명적 한계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나큰 업연.

다음 생에는 부디 암탉으로 태어나길.

아니지, 그러면 또 결국엔 사람에게 희생될 텐데.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 다들 좋다고 많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이는 비단 인간 세상만의 풍조가 아니다.

닭들도 이런 트렌드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수탉보다는 암탉이 환영받는 세상.

알도 못 낳고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수평아리는 그냥 처분해 버린다고 했던가.

어디 수평아리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을까.

그럼 우리가 사 먹는 닭고기는 다 암탉인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씁쓸하다.

그러고 보면 정말 잔인한 건 인간이다.

구미에 맞춰 생명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걸까.

수탉들아,

이왕 윤회하려거든 다음 생은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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