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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1. 2023

난닝구면 어떠하리, 긴팔이면 어떠하리

긴팔 내복 입히기 또 협상 결렬

2023. 11. 2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선생님이 내복 입고 다니래."

"알림장 봤어. 추워지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겠다."

갑자기 날이 쌀쌀해져서 옷차림에 더욱 신경 써야 할 계절이다.

역시, 선생님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부모 마음을 이렇게나 잘 아신다니까.


"우리 아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지? 내복 입으라고 하셨잖아. 내복 입고 겉옷 입어야지."

선생님의 알림장 찬스를 써서 나는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나 입었어."

라고 말은 하면서도 아들은 입고 있던 긴 내복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새하얀 민소매 반팔로 갈아입으셨다.

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난닝구' 또는 '러닝 샤쓰'라고 한다지 아마?

앙상한 팔이 드러나자 한기가 느껴졌다, 물론 나 혼자만.

"그건 민소매잖아. 한여름도 아닌데 그거 말고 내복 입어야 할 텐데. 밖이 얼마나 추운데."

어라? 얘가 선생님 말씀을 안 듣네, 게다가 엄마 말도 한 귀로 흘려버리잖아?

"엄마, 이것도 내복이야."

아들은 떳떳했다.

"그래, 엄마. 이런 것도 내복이지. 꼭 긴팔만 내복이란 법 있어? 안에 입으면 다 내복이지. 안 '내(內)' 몰라? 그러니까 안에 입으면 길든 짧든 다 내복인 거야."

옆에서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딸이 또 훈수를 두셨다.

뭐, 딴에는 그렇기도 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따님도 진작에 긴팔 내복을 벗어던졌음은 물론이다.

"거 봐 엄마, 이것도 내복 맞다니까. 내복은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안에 입는 옷은 다 내복이지."

아들은 누나의 지원에 힘입어 기세등등했고 옆에서 지원 사격이라도 해 줘야 할 남편은(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과연 나를 지원해 줄지도 의문이긴 하다) 진작에 출근한 지 한 오백 년이었으므로 2대 1로 내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너희는 내복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

한자만 보면 안에 입는 건 다 내복이겠지 뭐.

"선생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닐 텐데. 겨울이니까 긴팔 내복을 입으라는 그런 의미일 것 같은데, 엄마 생각에는?"

"어휴 엄마, 상관없어."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엄마 잔소리도 가뿐하게 패스하고 얇디얇은 민소매에 긴팔 겉옷(그것도 겨울옷이 아니라 자그마치 봄가을옷으로)을 입고 학교 갈 채비를 마친 아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이젠 겨울이니까 속에도 긴팔을 입으면 좋을 텐데."

"괜찮다니까."

"바람이 차잖아.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 (=감기 걸리면 너보다 내가 더 고생이다, 요것아.) 춥게 입으면 감기 걸리기가 더 쉽잖아.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안 입어?)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정 그렇다면 민소매 내복을 입은 과보는 그 어떤 것이라도 달게 받으려무나), 안 그래?"

"감기 안 걸려. 롱 패딩 입으면 따뜻해."

아들은 내 말에 계속 콧방귀도 안 뀌었다.

그 와중에 '롱패딩'은 콩글리시이므로 '패디드 코트(paded coat)'라고 정정해야 한다고, 마침 '이브닝스페셜' 콩글리시크리닉에서 알려 주더라고, 눈치 없고 주책맞게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물론.


유치하지만,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러다가 너희들 감기라도 걸리면 그건 너희가 옷을 춥게 입었기 때문일 확률이 커.(옷을 춥게 입었기 때문이라고, 순전히 민소매를 안에 입었기 때문이라고 단정 짓듯 말했다가는 남매의 반격을 피할 수 없으리니, 나도 빠져나갈 구멍쯤은 만들어놔야 했다. 항상 요리조리 쏙 빠질 여지를 남겨야 한다. 확신하는 말은 섣불리 하는 게 아니다, 남매 앞에서는) 단지 춥게 입어서(물론 정확한 인과관계를 추론하기란 힘들겠지만) 감기 걸린다면 엄마는 병원 안 데리고 갈 거야. 예방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그래도 감기 걸리면 어쩔 수 없지만 옷을 춥게 입어서 감기 걸린다면 그 과보는 너희가 다 받아야 할 거야. 알겠지?"

"그래. 알았어요. 감기 안 걸릴 테니까 걱정 마요."

그게 안 걸리겠다고 결심하면 안 걸리는 거라더냐?

긴팔 내복을 입느냐 민소매 내복을 입느냐가 감기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를 판가름하는 절대 잣대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긴팔 내복을 입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남매는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선생님이 이왕 알림장 써 주시는 거 '긴팔 내복을 입읍시다'라고 단단히 못 박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내복 이란 명사 앞에 이를 수식할 어떤 말도 없었다는 사실에 혼자만 안타까워했다.

"요놈들아, 너희 감기 걸리면 엄마가 제일 고생이야."

그 와중에 나는 만에 하나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뒷바라지하게 될 나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게 더 걱정이었던 거다.

"엄마, 엄마는 우리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엄마 걱정을 하고 있네?"

딸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쑥 말했다.

들켰다.

예리하기는.

"솔직히, 너희가 아프면 너희도 고생이고 기운도 없고 힘들어지겠지? 그러면 엄마도 너희 챙기느라 평소보다는 더 고생스러울 거야. 먹고 노는 것도 전만 못할 거고. 안 아프고 맛있게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면 좋잖아. 아픈 사람 챙기는 거 그거 보통 일 아니다. 너희 간호하다 보면 어쩔 땐 엄마도 지쳐. 그러면 결국 엄마까지 생활이 힘들어져. 엄마가 기운이 있어야 너희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고 놀아주기도 하고 그럴 수 있잖아. 잘 생각해 봐. 어떤 게 너희나 엄마에게 더 이득인지를."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말은 잘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렇긴 하네."

딸은 수긍도 빠르다.

연민에의 호소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원 플러스 원으로 주장하며 나는 은근슬쩍 아이들을 동요하게 만들고자 했다.


게다가 내가 최근에 혹독하게 감기를 앓고 난 직후라 나는 그런 경험을 아이들이 하지 않았으면 했던 마음이 더 컸다. 어찌나 독하던지 정말 학을 다 뗀 기분이었다.

어지간한 감기에는 아이들도 병원에 잘 데려가지 않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아플 때마다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은 어려서부터 하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면서 매번 병원에 가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했다.

무턱대고 약에 의존하고 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이겨내게 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심하다 싶을 때는 지체 없이 병원을 데려간다.

10년 넘게 야금야금 축적된 나만의 '스몰 데이터'를 근거로 상황 봐가며 판단한다.

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병치레가 거의 없는 편이기도 했다.

(아마 있었어도 무심을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긴팔 내복을 입히는 일은 무산됐고, 목이 너무 휑한 것 같아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우리 아들 목이 너무 추워 보인다. 이거라도 하고 가는 게 어때?"

턱받이 같은 터틀넥 조각을 슬며시 내밀었지만 아들은 단칼에 거절했다.

"엄마, 잠바 지퍼를 목까지 올리면 바람 안 들어와서 안 추워."

"교실에서는 잠바 입고 있으면 불편하니까 벗고 있을 거 아냐? 그럼 이거라도 하면 덜 추울 텐데. 목이 따뜻하면 체감온도가 더 올라간다잖아."

"괜찮다니까. 나 교실에서도 잠바 입고 있어."

세상에 만상에 그 거추장스러운 것을 입고 수업을 받는다고?

"네가 교실에서도 잠바를 입고 있는다는 건 추위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증거지. 안 추워 봐라, 굳이 잠바까지 입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긴팔 내복으로만 바꿔 입어도 덜 추울 텐데. 불편하지도 않고 말이야."

"나 하나도 안 불편해, 엄마."

이것을 권하든 저것을 권하든 아들은 협상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


시원하게 잠바 앞섶을 다 열어젖히고 아들이 집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 아들, 제발 잠바 앞 지퍼라도 잠그고 가라. 우리 홀쭉이 옷 사이로 바람 다 들어가겠다."

빼빼 마른 몸을 보고만 있어도 이 엄마는 추웠다.

달려가 여며주고만 싶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엄마 혼자만 전혀 괜찮지 않았던 흐린 겨울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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