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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0. 2023

일이었는데 일이 아니다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해?

2023. 11. 19.

< 사진 임자 = 글임자 >


"너희 엄마 계속 근무했으면 이렇게 편하게 구경 못 갔을 텐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계속 일했으면 이렇게 구경 다녔겠어? 날도 추운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밖에서 벌벌 떨면서 근무했겠지."

"그랬을 수도 있지. 근데 뭐 전 직원이 다 동원되는 건 아니니까."

"다 하는 거 아니었어?"

"잘은 모르는데 이쪽이 근무지면 어쩔 수 없이 당연히 다 동원됐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규모가 큰 편인데 여기 사무실 직원들로는 다 감당 안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신경 많이 쓴 거 같더라."


이 양반이 구경 잘하고 와서 또 왜 이러실까.

더위 먹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추위 먹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그날은 전 직장 근무지에서 제법 성대하게(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떤 행사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나마 내가 알고 한때 인기 있었던(지금도 아주 인기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가수가 초대된 밤이었다.

"가수 오는데 안 가? 가자."

"이렇게 추운 데 가긴 어딜 가?"

당구를 잘 치고 들어온 그 양반이 다짜고짜 밤마실을 나가자고 재촉했다.

사실 그날은 그동안 직장 일로 고생한 그 양반이 '특별히' 가족 여행을 가자고 계획한 날이었는데 아침에 내가 잠깐 나가보니 칼바람에 걷기도 힘들고 너무 추워서 일정을 취소하고 네 멤버 모두 집안에 있었다.

"난 당신 생각해서 가자는 건데."

"나 생각해주지 마."

"가자고 하면 안 가더라."

"너무 추우니까 그렇지. 컨디션도 별론데 괜히 감기나 걸리면 어떡해."

"다른 사람이 같이 가자는 걸 당신 생각해서 거절하고 들어왔구먼."

"제발 내 생각 좀 하지 말라니까. 가고 싶었으면 내가 알아서 가든지 했겠지."

"그럼 애들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

그 양반은 내게 딱지를 맞고 아이들 섭외에 들어갔다.

처음엔 둘 다 콧방귀도 안 뀌었다, 물론.

"진짜 바깥 너무 추워. 밤이라 더 추울 텐데."

"겨울이 그렇지 뭐. 얘들아, 가자. 가수 보러."

"가수 누구?"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은 알지만 초등생 어린이들은 모르는 가수다.

한 두 번 아이들에게 거절당하고도 그 양반은 포기를 몰랐다.

"하여튼 너희 엄마는 가자고 할 땐 안가."

"누가 할 소리? 내가 가자고 할 때는 안 간다고 하고, 하필 내가 가기 싫다고 할 때 꼭 가자고 그러더라."

"난 당신 생각해서 가려고 했지."

"아니, 제발 내 생각은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패티김 디너쇼 보내달라니까."

진심으로, 내 생각 안 해줘도 된다.

한 번씩 엉뚱한 소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내가 말했더냐.


그런데, 그 양반이 그렇게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데, 나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이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여서 나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만에 하나,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어.

같이 가지 뭐.

그런다고 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이거나 인류 평화가 깨어지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람들도 많은데 아이들 둘을 혼자 데리고 다니기 쉽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믿기 힘든 일이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아내를 생각해서 함께 밤마실을 나가자고 제안하는 남편이 있다고 한다.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렇게 사정을 하는데 끝까지 안 가겠다고 버틸 수는 없었다.

아이들도 어느새 제 아빠에게 포섭당해 버린 후였으므로.

"그래. 그럼 엄마도 같이 나가자."

이렇게 된 일이다.


오랜만에 네 멤버가 나간 밤마실이었다.

생각보다는 덜 추웠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어지럽고 정신없는 곳에 갔다 오니 기분 전환도 됐다.

"안 나간다고 할 땐 언제고, 가만 보면 너희 엄마가 제일 신났더라."

라고 반드시, 꼭, 짚고 넘어가는 그 양반.

"놀러 나간 거니까 놀아야지. 얌전히 묵념하다 오리?"

"그럴 거면서 안 간다고 그래?"

"내가 항상 말하잖아. 없으면 안 쓰지만 있으면 쓰고, 안 나갔으면 모를까 이왕 나간 김에 놀다 가는 거라고."

세상 조신한 새색시처럼 그 요란한 노래에도 전혀 미동 없이 꿋꿋하게 망부석처럼 굳어 있던 그 양반,

그러려고 밤 중에 굳이 나오셨나?

그렇게 (내 생각에는) 잘 놀다 와서 웬 느닷없는 소린지 모르겠다.

"너희 엄마, 편하게 구경한다. 일했으면 택도 없지."

이런 소리를 해 가면서 말이다.

그동안 내가 직장 생활할 때 옆에서 본 게 있다고 그곳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다 기억하고 있나 보다.

지방직(일반행정) 공무원의 숙명이다.

동원되고 동원되는 운명.

같은 지방직이더라도 교육행정직인 그 양반에게는 없는 것들이다.


축제도 많고 비상근무도 많고 행사도 많은 곳, 물론 지자체마다 다르겠지만 일단은 공무원들이 동원되는 일이라 솔직히 축제며 행사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 달가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공직 사회를 벗어나 그냥 주민으로 살다 보니, 그렇게 은근히 힘쓰고 고생하는 공직자들이 있어 주민들이 이런 호사(바로 집 앞에서, 이 정도면 굉장한 호사다)도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

각종 지역 축제를 통해 이른바 문화생활이란 것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말이다.

단지 입장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런 행사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에 근무할 때는 그저 일로만 여겨졌다. 싫었다. 하도 동원되는 일이 잦아서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 더 괜찮은 행사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렇게나 간사해지다니.

옛날에는 불만이던 일들이 이젠 고마운 일이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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