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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9. 2023

비 오는 날이 부부싸움 하는 날

비가 잘못인가 연가가 잘못인가

2023. 11. 18.

< 사진 임자 = 글임자 >


"비가 오네. 어떡해. 애들 우산 안 가져갔는데."

창밖을 내다보다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가길래 비가 내리는 줄 알았다.

둘 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게 생각나서 혼잣말을 한 것뿐이었다.

"저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맞아도 괜찮아."

하필이면 그날 출근하지 않았던 그 양반이 옆에서 또 몇 마디 거드셨다.

아차차, 나 혼자 집에 있는 게 아니었지 참.


"비상 우산 갖다 놓으라고 했는데 학교에 있으려나 모르겠네."

평소에 갑자기 비 올 때를 대비해서 비상용으로 하나씩 미리 갖다 두라고 일렀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날 비가 몇 번 와서 그것을 쓰고 왔다가 다시 안 챙겨 갔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저것도 비야? 우리 때는 다 비 맞고 다녔어. 비가 오면 맞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럼, 저게 눈이냐?

그 양반은 그깟 보슬비(라고 혼자만 엉뚱하게 추측하는) 정도 맞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이었다.

"이젠 겨울이야. 날씨가 얼마나 추워졌는데 그래? 그리고 비 맞으면 뭐가 좋다고? 어쩔 수 없으면 모를까 이왕이면 비 안 맞는 게 낫지."

"나 때는 다 비 맞고 다녔어. 너무 애들을 오냐오냐 기르면 안 돼. 다 해 주면 안 된다니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그 양반이 옛날에 비를 맞고 자랐든 우박을 맞고 자랐든 나는 관심 없다.

이미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내 아들이 아니다.

하지만 내 아들은 남의 아들과 다르다.

아들이 우산 가져가기 싫다고 놔두고 간 것도 아니고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게다가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내가 출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올해 아들이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평소 건강한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느닷없이 그런 일이 생기자 나는 정말 밤잠도 설치고 얼마나 혼자 애태웠는지 모른다. 너무 갑작스럽게 아파서 얼떨떨했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아픈 자식을 옆에서 보는 엄마 마음을 그 양반은 알기나 할까?

하긴 그 양반은 밥만 잘 먹더라, 잠만 잘 자더라.

굳이, 왜, 우산이 집에 넘쳐나는데도 갖다 주지 말라는 건지.

아침에는 보슬비같이 내리는 것 같았는데 점심때쯤 도서관에 가려고 나서니 이젠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발길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굳이 그런 비를(그것도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맞을 필요가 있을까?

(절대 갖다 줄 사람이 아니므로) 그 양반 보고 갖다 주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출동하겠다는데 나보고 너무 아이들을 오냐오냐 하며 기른다는 것이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다.

어렸을 적에 시어머니가 비 오는 날 우산을 갖다 주지 않아 비를 맞고 집에 오곤 했다는 남편은 남편이고, 그렇게 자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불안했다. 최근에 나도 (비 한 방울 안 맞고도) 독감에 걸려 죽다 살아나다시피 해서 행여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지레 걱정이었다. 게다가 친정 부모님이 최근에 보슬비를 조금 맞고 독감이 걸려 2주째 고생 중이셨다. 예방 접종을 한 게 무색하리만치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아프면 나랑 애들만 고생이다.

만약 우리가 감기 걸려서 그 양반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또 뭐라고 할 거면서. 빤히 보인다. 예방할 수 있으면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감기쯤은 우습게 아는 그 양반은 좀처럼 의견일치를 보기 어렵다.

요즘 감기가 어디 옛날 감기 같으냔 말이다.

하긴, 독감 예방 접종 해야겠다고 했더니 그런 걸 뭐 하러 맞냐고, 감기도 걸리고 살아야 한다고, 본인이 어렸을 때는 그런 것도 안 맞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감기는 본인이 걸리는 건 나도 상관 안 한다니까.

감기 까짓 거 걸리면 걸리는 거지 그렇게 말할 땐 언제고 아이들이 감기 걸려서 기침을 하니 그러다 폐렴 걸리면 어쩌려고 방치하냐고 내게 버럭 하던 사람이었다.

설마 내 자식들을 방치하기야 했을까.

나나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면 기관지가 많이 안 좋아지면서 잠도 못 잘 정도로 기침이 심하다. 생활이 안된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최소한 안 할 테니 그냥 보고 있기만 하면 좋겠다.

어떻게 우산 갖다 주는 게 오냐오냐 기르는 것이란 말인가.

나처럼 오냐오냐 하지 않고 기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건 내가 원하지 않는다.

어쩔 땐  이 정도쯤이야 이러면서 비가 와도 마중 나가지 않기도 하고, 내가 항상 우산을 갖다 바치는 것도 아니고 상황 봐가면서 하는 건데,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산이 필요해 보여서 그런 건데 출근을 하지 않으면 얌전히 안정을 취하며 푹 쉬기나 하실 것이지 사사건건 내 말에 트집이다.

"이 human아. 내가 언제 댁보고 우산 챙겨 나가라고 했어? 내가 나갈 거라고. 가뜩이나 지금 우리 아들은 감기 기운 있는데 괜히 비 맞아서 독감이라도 걸리면 어떡해? 저번에 감기 걸려서 나은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고! 아프면 병원 데려갈 것도 아니면서 열난다고 밤새 잠 안 자고 옆에서 간호해 줄 것도 아니면서 간섭 좀 하지 마. 뭐 하러 출근도 안 하는데 아침 8시부터 일어났어? 낮 12시까지 자라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당신이 퇴근길에 비 맞고 오는 건 상관 안 해. 그 정도 비는 맞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 아들 딸은 다르다고. 사서 병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결정적으로  지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고! 제발 나설 때 안 나설 때 구분 좀 해!"

라고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전에 서 너 번 해 보았으나 내 입만 아팠으므로.


희한하게 남편이 집에 있을 때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집에 넘쳐나는 우산, 마침 비도 많이 오길래 갖다 주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남편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한 게 화근이었다.

그냥 무조건 남편이 하루 쉬는 날은 아이들 가방에 비상 우산을 하나씩 쏙 넣어줘야겠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마중 가려고 했는데 잠깐 다른 일을 보는 사이 아들이 집에 왔다. 겉옷과 가방이 흠뻑 젖은 채로.

"엄마, 비 너무 많이 와, 바람도 심하게 불고."

쫄딱 젖은 아들이  말했다.

"에이, 괜찮아, 괜찮아. 아빤 옛날에 다 비 맞고 다녔어."

라고 눈치 없이 또 그 양반이 끼어들었다.

결국, 아들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고, 머리가 아프다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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