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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8. 2023

그 남자는 어려 보이는 게 좋아서

들으면 기분좋고도 기분 나쁜 말

< 그림 주인공 = 그 남자 >


"우리 딸은 어쩜 이렇게 이쁠까?"

남편이 딸에게 말했다.

"그야 날 닮아서 그렇지."

내가 남편에게 대답했다.

"너희 엄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남편이 정색했다.

"무슨 소리긴. 엄마를 닮아서 예쁘다 이 말씀이지."

나는 더 정색했다.

"엄마가 아빠 어릴 때 사진 못 봤나 보다. 얘들아, 너희 아빠 어릴 때 사진 봤지?"

남편은 자꾸 옛날이야기를 했다.

"옛날 얘기 그만하고 현재에 대해서만 얘기해. 어쩌다 이렇게 됐어?"

"나도 옛날엔 정말 괜찮았다고. 안경쓰기 시작하고 이렇게 됐어."

정말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수 십 년이 지나는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무실에서 다들 나 총각인 줄 알았어. 이거 왜 이래?"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착각은 자유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아?"

"저번에도 한 직원이 나보고 결혼 안 한 줄 알았다고 하더라니까."

"못한 줄 알았다고 생각한 거 아니고? 본인이 결혼 안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거 아니고?"

"다들 나를 어리게 본다고. 저번엔 나보다 더 어린 직원이 나한테 반말하더라니까. 한두 번이 아니야.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쁘더라."

"하여튼 너희 아빠는 어려 보인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은가 봐."

"어디 가면 다들 나 어리게 본다고. 너무 어려 보여도 탈이야 진짜."

아니, 어려 보인다고 착각하고 사는 게 탈이야, 진짜.

"정말 다들 나 마흔으로 안 본다니까."

"백사십 살로 보지?"

"너희 엄마만 인정 안 해."

"내가 보기엔 그 나이로 보이는데."

"당신만 그렇지 남들은 다 젊게 봐."

"어려 보인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아? 어려 보이면 뭐하고 아니면 뭐해. 난 나이들어 보여도 괜찮으니까 몸이나 안아팠으면 좋겠다."

도대체 총각인 줄 알았다는 둥, 어려 보인다는 둥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으나, 실체가 없을 것 같아 거기서 멈췄다.


나도 어렸을 때(?)는 내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자식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어르신들이 번개 중매를 서려고 할 때는 난감하면서도 속으로는 흐뭇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가 둘이나 있어요."

라고 대꾸하며 나는 얼마나 우쭐해했던가.

나는 이렇게 다른 이의 오해에 기분 좋아하면서도 남편의 일에 대해서는 정색하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 모순된 마음이 내가 생각해도 우습긴 하다.

이젠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만큼 나이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적당한 관용과 이해와 상냥함을 갖춘 그런 사람말이다.

하지만 또 잘 안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곱게 나이 먹는 일, 나잇값 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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