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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7. 2023

김장 날짜, 그거 며느리가 정하는 거 아니다

소리소문 없이 올해도

2023. 11.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큰 새언니한테 전화 왔더라. 12월 9일 날 오빠 출장 있으니까 그때 와서 김장하자고 하더라."


그 시어머니의 첫째 며느리는 항상 본인이 김장 날짜를 정해서 시어머니에게 알려준다.

어디까지나 그 길일을 택하는 것은 시어머니 몫인데 말이다.

"어머님 혼자 하시려면  힘드니까 저희 가면 같이 해요."

라면서 매년 어떤 의지를 보이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할란다."

라고 매번 똑같이 대답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부탁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심은 물론, 콧방귀도 안 뀌신다.


"엄마, 그래서 그때 김장 하게?"

"느이 새언니가 그때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란다고 안 하냐? 내가 알아서 해야제.(=딸아, 네가 있잖니.) 그 집 식구들 오면 정신없고 일도 안된다.(=딸아, 네가 올해도 당첨됐다.) 그냥 나 혼자 해야제(=당연히 너와 나는 원 플러스 원이다), 사람 많으믄 일도 안된다.(=딸아, 며느리는 안 와도 너는 꼭 와라.) 애기들 오기 전에 해서 다 싸놨다가 오믄 가져가라고 해야제.(딸아, 네 임무가 막중하다.)"

올해도 역시나 엄마는 다 계획이 있으시다.

세 며느리들 말고 오직 하나뿐인 딸과 함께 김장할 계획 말이다.

나야 친정에서 김치를 갖다 먹으니까 당연히 동참할 생각이고 말이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신없고 일도 안된다는 엄마 말씀에 전적으로,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큰 오빠네는 자그마치 아들 3형제다.

물론 첫째는 학업에 정진하느라 명절에만 오는 편이고 나머지 초등 5학년, 1학년 두 아들들은 매번 오빠 내외와 동반하여 친가에 온다. 다음 달 초에 집 근처 지역에서 출장이 있어서 그때 맞춰 가족들을 다 대동하고 와서 온 김에 김장을 하겠다고 며느리가 중대 발표를 했단다.

하지만 오빠 출장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때가 다 될 것인데, 어느 세월에 김장을 한단 말인가. 다음날은 다시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 바쁜 터인데 말이다.

아마도 새 언니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장이란 게 언제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닌데 말이다.

밭에서 배추를 캐 와서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김치 소도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가장 나중에 김장을 하는 것인 덴 단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김장을 언제 얼마나 할 것인지는 순전히 시어머니의 권한인데 말이다.

물론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 혼자 고생할까 봐 같이 와서 하겠다고 하는 그 마음은 잘 안다. 하지만 엄마는 차라리 혼자(물론 여기서 혼자라 함은 친딸인 나를 반드시 동반하여) 김장을 해버렸음 해버렸지 그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혼이 다 나간 채로 김장을 할 마음이 전혀 없으시다.

올해 부쩍 몸이 안 좋아져 점점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올해도 소수 정예반으로 김장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김장 필수요원, 나만 원하신다.


세 며느리는 제외하고,

나만,

그저 친딸만 단단히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나도 엄마의 며느리들이 굳이 안 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며느리들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2할이라면, 8할은 사람들이 너무 북적이는 게 싫어서, 아들, 손자, 며느리도 부담스러워서 딸 하고만 둘이 거사를 치른다는 건 언제까지고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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