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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2. 2023

초과 근무도 눈치 봐야 하는 공무원이라니

세상에 불량한 공무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3. 11. 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일은 많고 초과 근무는 해야겠는데 그냥 봉사해야겠어."

"지금까지 봉사한 것도 충분해."

"은근히 초과 신청 못하게 한다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주말에도 못 쉬고 일하는데 그런 것도 눈치 줘?"

"옛날에는 그냥 하기도 했다고."

"또 옛날 타령이야?"

"노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일 하느라고 그런 건데 그런 것까지 눈치를 주면 어떡해?"

"그러게."

"하긴, 나도 옛날에 보면 수요일은 무조건 가족 사랑의 날이라고 6시 되기도 전에 방송 내보내고 어서 집에 가라고 하더라. 일이 있으면 남아서 일할 수도 있는 건데 초과 근무 신청하면 다 가짜로 하는 거라고 생각할까?"

"그게 기관장 평가에 들어가잖아."

"도대체 그런 게 왜 평가에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튼 옛날에 다 그렇게 봉사하고 살았다고 그렇게 하라는 식이야. 근무시간에 최대한 다 하라고."

"근무시간에 다 할 수 있으면 왜 초과를 해? 누가 새벽까지 남아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주말에도 하루 종일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특히 당신 같은 성격은 어떻게든지 초과 근무 안 하려고 근무시간에 쉴 틈도 없이 일하는 스타일이잖아. 일이 넘쳐 나니까 밤늦게까지 남는 거지. 하루 종일 일해도 최대 4시간 밖에 인정 안 해주면서 그것도 못하게 해?"

"아무튼 눈치 보여."


매일 과로하시랴 눈치 보시랴 요즘 정말 고생이 많으신 국민의 봉사자가 우리 집에 한 명 있다.

초과근무 수당이고 뭐고 밤 9시 전에만 퇴근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매일 노래하는 이 말이다.

어젯밤에도 밤늦도록 일을 하는데 초과근무 신청을 안 해서 저녁밥도 못 얻어먹었다고 한다. 초과 신청한 기록도 없는 사람이 밥까지 먹으면 안 되긴 안되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 이젠 그런가 보다 하지만  뭔가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은 느낀다. 느끼지만 힘없는 하위직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남편은 평소에도 기본 두세 시간은 저녁밥도 굶고 일만 하다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끼니는 챙겨 먹고 일해야지 그렇게 봉사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 줄 아냐고, 봉사는 그렇다고 쳐도 '일까지 하는데 밥은 굶지 말아야지.' 하는 내 말은 흘려듣기 일쑤다.

덕분에 나는 (가능하면)한밤중에도 최대한 깨어있다가 때늦은 저녁을 차리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까지 일하는 직장인도 있는데 그깟 밥 차리는 게 대수랴.

그나마 어제는 선방해서 12시 이전에 퇴근하셨다.

달리 걸핏하면 그곳을 내가 워라벨(war-label)이라고 칭하는 게 아니다.

정작 불량한 직원들은 가려내지 못하면서 멀쩡히 일하는 사람까지 은근히 압박하는 그런 분위기, 예나 지금이나, 그곳이나 이곳이나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설마 요즘에도 양심 없이 일은 안 하면서 초과 근무 신청만 하고 수당 챙기는 그런 정신 나간 공무원이 있어?"

"나야 모르지."

"하긴, 뉴스 보면 한 번씩 나오긴 하더라. 진짜 이해 안 돼. 왜 일도 안 할 거면서 가짜로 그렇게 신청하나 몰라. 그러니까 멀쩡히 일하는 사람들까지 의심받지."

"거기만 그러겠어?"

"예전에 근무할 때도 보니까 한 번씩 감사 나와서 조사하더라. 초과근무 신청 많이 한 사람 자료 받아서 무슨 조사하는 것 같던데."

그때 결과가 어땠더라?

"그래도 젊은 직원들은 또 다르지 않아?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 그런가 보다 해도 젊은 사람들은 할 말도 하고 그러잖아."

"잘 모르겠어."

하긴, 지금 남편은 젊다고도, 나이 들었다고도 하기 애매한 그런 위치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팀에서는 가장 젊은 막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자유 의지'라고는 애당초 박탈당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았으니 너도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무언의 압박을 시도 때도 없이 해오는 직원들과 한 팀이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요즘 사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틀렸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답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라테'는 안 그랬다는 듣고 싶지 않은 전설의 고향 같은 스토리를 한 번씩 언급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나라 안 어디에선가는 변하지 않는 몹쓸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는 한가 보다.

그래서 한 번씩 인상 찌푸려지는 관련 소식이 뉴스에 나오면 엉뚱한 공무원들까지 뭇매를 맞는 건 다반사다. 하지만 그럴 때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최근에도 한 기사에서 그런 내용을 다룬 것을 보았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지금이 때가 어느 때라고?

분명히 '극히 일부'일지라도 불량한 마음으로 가짜 초과근무를 신청해 놓고 놀고 와서 지문만 달랑 찍고 퇴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심심찮게 뉴스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옛날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요즘은 정말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공직자를 감시하는 눈들이 사방에 눈을 희번덕이며 경계하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가 잘못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인 세상이다.

그게 무서워서라도 양심껏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무조건 고자세로 나가서도 안 되겠지만, 최소한 공직자라면 양심껏 살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청렴의 의무, 그것만이라도 기본적으로 지키고 사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공무원이라는 자리가 괜히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들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요구는 까다로워지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아직도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대로 사는 사람들이, 그것도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이 뻔뻔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모습을 보고 살아야 할까.

바뀐 듯, 바뀔 듯, 하지만 '여전한'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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