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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3. 2023

초과근무하는 공무원에게 급파된 스파이

 무작정 의심하기 있기 없기?

2023. 11. 2.

<사진 임자 = 글임자 >


"뭐야, 우리가 가짜로 초과하는지 확인하려고 온 거야? 진짜 기분 나쁘다."

 

그날도 밤 11시가 다 되어가도록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 아직까지 안 가고 일하고 있네."

급파된 스파이로 의심되는 직원이 고요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날 나는 옆 직원과 밤늦도록 일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사무실 문을 잠그고 일을 하는데 그날은 문 잠그는 일도 잊고 일을 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아니면 출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직원이라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전 직원이 다 가고 난 후 남아서 일을 할 때에는 출입문부터 단단히 잠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들어오려고 하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언젠가 혼자 밤늦게까지 문을 잠그고 일하는데 투명한 문 밖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민원인(인지 귀신인지)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보고 식겁한 적이 있었다. 무서워서 블라인드로 창문을 다 차단하고 출입구 문을 잠그고 최소한의 실내 불만 켜고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와중에 지나가다가 문을 두드리는 민원인이 꼭 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안으로 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3살 아들, 5살 딸을 집에 둘만 남겨 놓고 일하던 때가 잦았던 해였다.

남편도 바쁜 날은 어쩔 수 없이 남매만 집을 지키게 해야 했다.

간혹 아이들을 데려와 민원인 의자에 앉히고 책이라도 보게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 직원과 나만 사무실에서 초과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각자 할 일을 하느라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고생이 많네요."

이러면서 들어오는 사람이 직원인 줄은 난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어? 웬일이야?"

라며 옆 직원이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직원을 지나가다 들러 본 속없는 민원인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일이 진짜 많은가 보네."

이렇게 운을 뗀 직원은 느닷없이 우리 앞에 조각 케이크를 내밀었다.

급파된 스파이치고는 인정 있는 이였다.(고 나만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격려 차원의 방문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고맙게 그것을 먹어치웠다.

역시 시골 인심은 이렇게나 넉넉하단 말이야.

잠깐 들렀다는 그 직원은 몇 마디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나도 이내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옆 직원이 정색을 하며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근데, 설마 우리 일 안 하고 노는지 가보라고 해서 온 거야?"

라는 말을 듣자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평소 왕래도 없던 직원이고 친하지도 않은데 굳이 퇴근 시간이 지난 야밤에 사무실을 들를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밤늦은 시간에 굳이 들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 스파이가 틀림없다고 확신해 버렸다. 모든 게 정황상 딱딱 맞아떨어지잖아?

정말 그 직원 말대로 그런(?) 역사적 사명을 띠고 우리를 급습한 거란 말인가?

그렇다면,

넌 우리에게 목욕값을 줬어, 정말.

세상에 만상에!

지은 죄도 없이 의심받는 기분이라니!

기분이 나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유쾌한 일이 못되지만, 관련자 입장에서는 확인을 해야 할 필요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위에서 시키니까 급습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직원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둘이 노닥거리고 있지 않고 열일하고 있더란 결과 보고를 하게 된다면 한밤중에 급습한 보람이라도 있겠지.

(하지만 가만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그런 목적으로 사무실을 방문했는지 아닌지는 확인 불가다. 이제 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확인해서 뭘 어쩌겠는가. 다만 그 직원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옆 직원의 말마따나 그런 느낌이 농후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꼭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아도, 은근슬쩍 떠보지 않아도 은연중에 양심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진정으로 색출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들일 텐데.

우리는 떳떳했으므로, 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거칠 것은 없었다.


걸핏하면 자정에 퇴근하는 남편을 보며 그때의 일이 더 선명히 떠오르곤 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점점 더 또렷해지는 기억,

요망한 조각 케이크는 참으로 달콤했지만,

왠지,

뒷입맛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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