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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2. 2023

계산은 하고 가야지?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2023. 11. 1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OOO 전학 갔어."

"뭐라고? 언제?"

"어제까지 왔어."

"그래? 너한테 아무 말도 않고 갔어?"

"응? 무슨 말?"

"뭐 준 것도 없어?"

"주긴 뭘 줘?"

"네 사진 말이야. 그때 그 친구가 찍어줬다며. 근데 왜 그 사진을 안주냐고."


지난번에 딸이 상을 받았는데 방송실에서 상 받는 장면을 방송으로 각 반에 보내줬는데 딸 반은 화면만 보이고 소리가 안 들려서 반에 돌아와 다시 한번 담임 선생님이 시상식을 해주셨다고 했다.

그때 그 문제의 사진을 찍은 그 친구가 전학을 가버렸단다, 내 딸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근데 왜 사진을 아직도 안 올려주는 거지? 엄마 그 사진 보고 싶은데."

"OOO가 사진 찍었어. 올려주겠지."

매일 사진을 담당하는 친구가 수업 모습을 한 장씩 올려주고 있었다.

수업 모습이라고 해봤자 반 전체 아이들을 멀리서 뒷모습만 찍은 게 거의 대부분이라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딸은 코빼기도 안 보이기 일쑤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도 아니니 그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않은지 오래지만(수고스럽게 굳이 사진은 안 올려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긴 하지만) 내가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사진이 한 장 있기는 했다.

보통은 하루에 한 장뿐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여러 장의 사진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 친구가 사진을 찍었다는 날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합격아, 왜 네 사진 안 올려주지? 깜빡했을까? 다른 친구 상 받는 건 올라왔던데."

"몰라. 잊어버렸나 봐."

"혹시, 그 친구가 너 좋아해서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려고 안 올리는 거 아니야?"

"하여튼 엄마는 참..."

"그렇지 않고서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는데 왜 네 사진만 안 올려주는 거지?"

"그러게. 다른 친구 찍은 사진은 올렸던데."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그 친구가 찍었다는 다른 사진은 다 올라왔는데 '왜 하필' '네 사진만' 안 올려주는 거지? 이건 뭔가 있어. 틀림없어. 자기 혼자만 두고 보려고 그러나 봐."

"에이. 설마. 더 기다려 봐, 엄마."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어코 그 친구는 전학을 가버렸다.

아니, 남의 사진은 주고 가야지, 아니면 삭제했단 얘기라도 해주고 가야지,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 어쩐다니?

도대체 어떻게 찍힌 사진인지 확인조차 못했는데 이대로 그냥 전학 가버리기야?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에 딸 생일날에 자그마치 생수를, 그러니까 '물'을 선물로 준 남자사람친구다.

딸도 그에 보답하는 의미로 물을 한 병 사서 선물했다.

그때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았어.

뭔가 의미가 있을 거야, 왜 하필 물을 선물로 줬을까?

나는 혼자 오만가지 추측에 억측까지 하고 말았다.

결론은, 그 친구가 내 딸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물씩이나 선물했다고 말이다.

딸은 터무니없는 나의 상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땐 심증만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확실한 물증을 잡았다.(고 나만 또 혼자 앞서갔다.)

불현듯 20년 전의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짝사랑하던 오빠를 포함해 과 전체가 문학답사 갔던 날 그 오빠는 내 사진을 찍어줬었다.

그런데 나는 현상한 그 사진을 받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좋았으면 필름까지 간직하고 있을까.

기원전 3,000년 경에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그런 일을 했었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아마, 어쩌면, 그 오빠도(?) 나를 좋아해서 혼자만 간직하고 남몰래 내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내게 주지 않았던 거라고. 물론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상까지 했는데 신경 쓰고 있지 않다가 어디 방구석에 나뒹굴다가 버려지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다.

그러니까, 전학 간 딸의 반 친구를 게슴츠레하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실 또한 당분간 미스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아무리 딸이 좋기로소니 그래도 사진 주인에게 공개는 한번 정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짜고짜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사진을 내놓으라고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를 어쩐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남의 사진은 주든지, 삭제하든지, 둘 중에 한 가지는 하늘 걸로.

느닷없이 짝사랑했던 그 오빠가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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