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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5. 2023

돌변했다, 남편이

야망(?)의 남자

2023. 10.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요즘 일도 많고 많이 힘들지?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같네. 거기 간 거 후회되진 않아?"

"처음엔 진짜 힘들었지. 서 너 달은 그랬는데 이젠 익숙해졌어."

"그래도 생각보다는 아주 잘하고 있어."

"그러게. 내가 그런 데 갈 거라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승진만 하고 바로 나간다며. 다시 안 들어갈 거지?"

"글쎄."

"글쎄라니? 말이 달라졌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설마 사무관까지 하려는 건 아니지?"


사무관을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데, 절대 쉬운 일도 아닌데, 남편의 태도를 보아하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도 싶었다.


"지금 고생하는 것도 지겨운데 설마 5급 시험까지 보려고?"

"몰라. 6급까지는 다들 어떻게 해도 그다음부터는 차원이 다르니까."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공부는 또 따로 해야 하고, 바쁘고 힘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살아?"

"진짜 옆에서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라."

"힘들겠지. 아무나 하겠어?"

남편이나 나나 크게 승진 욕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었던지라 사고 없이 무사히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고 너무 일에만 치어 사는 것은 원치 않았었다. 가만 보면 일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한 것 같았지만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여겼다. 적어도 우리는 직장 일이 전부인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최근 남편 팀 내에서 두 명이 5급 승진 시험을 치렀는데 안타깝게도 두 명 다 합격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팀 분위기도 싸늘했다고 한다.


"승진하려고 1년 내내 공부하고 거기에 다 쏟아부었는데 안되니까 옆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더라."

"정말 그렇겠다. 그 힘든 걸 어떻게 하나 몰라."

"내년에 또 도전할 텐데 진짜 힘들겠어."

"그러고 보면 거기 팀장님 대단하셔. 그런 걸 다 거치고 그 자리에 있는 거 아냐."

"그렇지. 가만 보면 거저 되는 건 없는 것 같아. 그만한 능력도 있어야 하고."

"그렇겠지. 요즘엔 일도 잘하고 뭐든 다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진짜 그래. 가끔씩 나도 놀란다니까. 확실히 능력은 있는 것 같아. 역시 그동안 일해온 게 거저는 아니었어. 다른 6급들을 봐도 그렇고. 일한 세월을 무시 못한다니까."

"그래. 같이 있는 동안 많이 배워 봐."

"진짜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어. 난 전혀 마음도 없었는데 어떻게 오게 됐나 몰라. 생각해 보면 다 그래. 여기 들어 오 것도 당신이 일 그만둬서 집에 있으니까 애들 봐줄 수 있어서 지원하게 된 거고. 전에 같이 일할 때는 생각도 못했는데."

"같이 일할 때도 애들은 별로 신경 안 썼잖아?"

"아무튼. 당신이 애들 봐주니까 난 일만 해도 되고."

"너무 힘들면 다른 부서로 옮기든지 해. 힘들게 버틸 필요는 없잖아."

"나도 그 생각이야. 경험 삼아 들어온 거니까."

"벌써 1년 다 돼 간다. 승진이 다 무슨 소용 있어. 안 되겠으면 딴 데 가면 되지. 어느 부서로 가고 싶어?"

"내가 가고 싶다고 원하는 데로 다 갈 수 있나."

"자기 정도 능력이면 충분하지."

 오랜만에 하는 건전한 부부간의 대화다.

그것도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도록.


"어때? 이왕 하는 거 사무관까지 도전해 볼래?"

농담 삼아 내가 올 초에 남편에게 말했을 때 그때는 남편이 펄쩍 뛰었었다.

"당신은 일까지 그만뒀으면서 나 혼자만 고생하라는 거야 뭐야? 승진만 하면 나가서 다시는 안 들어올 거야."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보고 6급 때도 다시 또 들어오래. 옛날에는 '전 다른 욕심 없어요. 그냥 승진만 하면 바로 나가서 안 들어올 거예요.' 이랬는데 요새는 '글쎄요.' 이런다니까."

"설마 사무관 욕심 내는 거야? 하긴 OO 남편도 사무관 달았잖아. OO 남편도 작년에 사무관 달았고. 자기라고 못할 건 없지. 한다고 하면 내가 팍팍 밀어 줄게."

팍팍 밀다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지만 실없는 소리 한 번 했는데 남편은 자못 진지했다.

어라?

이럴 사람이 아닌데?

높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더니 눈이 높아지셨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속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조용히 살다가 가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분명히.

1년 만에 사람 마음이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만 하고 사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몰라."

이러면서 혀를 끌끌 차더니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나.

"나는 윗사람들 집에 가서 김치는 못 담가줘."

기원전 3,000년 경에, 옛날 옛날에 어느 분이 '그런 일까지'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나 남편 성격상 그런 일을 꿈도 못 꾼다.

아니 안 꾼다.

그런데 이 사람이 슬슬 야망이 솟아나고 있는 건가?

남편에게서 들은 사람들 얘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지쳤다.


"승진 좀 빠르고 늦는 건 아무 문제가 안돼. 몇 급으로 퇴직하는지는 문제가 아니야. 그저 건강 잘 쟁기면서 사는 게 제일이지. 내 몸 아파봐. 다 무슨 소용이야?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니까. 다 가질 수는 없어. 그건 진짜 욕심이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생각이 있으면 적극 지원하겠어."

어차피 그럴 마음이 없을 거라고 짐작하고 나는 슬쩍 남편 마음을 떠봤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절대 쉽지 않을 텐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나는 신경쓰고 있었다.

남의 남편이야 사무관이든 대통령이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랴.

그저 밖에서는 마음 편히 맡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최선인 것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도전을 해버리겠다고 선포하는 날, 걱정은 그때부터 해도 늦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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