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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6. 2023

뺏기느니 먹어버릴 테야

어떤 계(鷄)들의 세계

2023. 11.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날마다 낳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냐?"

그날도 나는 남의 알들을 얌체같이 꺼내오며 말했다.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다."

그건 정말 내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지?

그럼 닭은?

특히 암탉은?

매일 알을 퐁퐁 낳는 전 세계의 암탉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가끔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대 시절에 집에서 닭을 수 십 마리 기른 적이 있었다.

가장 많았을 때는 30 마리도 넘었다.

농사를 지으며 반찬을 자급자족하듯 닭을 직접 길러 달걀과 닭고기를 충당했다.

어린 닭들이 다 크고 나면 암탉은 달걀을 낳았다.

"이거 내가 안 먹으면 너희가 먹으니까 내가 가져간다."

요즘 이렇게 말하고 달걀을 꺼내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에도 전혀 대답이 없었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제가 낳은 달걀(혹은 남이 많은 달걀)을 먹어치우는 닭이 있다고 한다.


처음 그 믿기 힘든 비보를 아빠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아빠, 아무리 짐승이라고 자기가 낳은 알을 먹는다고? 고양이나 다른 들짐승이 먹었겠지."

오래전에 몇 번 그런 광경을 목격한 당사자이므로 나는 확신에 차 말했다.

건들건들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들이 내 몫의 달걀을 훔쳐 먹는 그 몹쓸 광경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 그것들이 얼마나 잘 먹는다고."

아빠도 나 못지않게 확신에 찬 모습이셨다.

"그래도 어떻게 자기가 낳고 자기가 먹어? 아무리 닭이라도 그렇지."

아빠가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지만, 종종 농담을 잘하시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었다.

"이것아, 그것들이 먹으니까 먹는다고 하제, 오늘도 몇 개나 깨졌더라."

아빠도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어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정말 그런가 본데?


어느 날,

나도 드디어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정말, 자기가 낳았는지 남이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을 쪼아 먹고 있었다.

"이것아, 낳아 놓고 그걸 먹어버리면 어떡해?(=내가 갖다 먹으려고 했는데.= 그건 내 몫인데.=너희는 모이를 먹으면 되잖아.)"

다소 충격적인 장면에 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푸드덕 거리며 범계(?)는 더 화들짝 놀라며 그 범행 현장을 황급히 떴다.

그러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역시나.


아빠가 모이를 적게 주시나?

왜 저러지?

"아빠, 진짜 닭들이 알 먹습디다. 나도 봤네."

"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너는 내가 말할 때는 안 듣고."

"근데, 자기가 낳고 그걸 왜 먹을까?"

"껍질에 있는 영양분 섭취하려고 그러제."

아빠는 그렇게 추측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있을 법한 일인가?

옛날에 닭을 키울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닭이 알을 쪼아 먹는 광경을 본 이후로  알을 낳은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그것을 꺼내오곤 한다.

암탉은 친절하게도 알을 낳은 직후 큰 소리로 알려 준다.

솔직히 꺼내 오면서도 닭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다.

눈치도 보인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재빨리 챙기는 것이다.

갓 낳은 달걀을 손으로 만졌을 때의 그 따스함이란.

닭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애초에 닭을 기른 목적이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얻는 것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다.


닭은 왜 자신이(혹은 다른 닭이) 낳은 닭을 자꾸 먹어 치우는 걸까?

혹시 내가 야금야금 꺼내 가는 게 괘씸해서?

인간에게 주느니 자기가 먹고 말겠다는 심리에서?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이 마음,

우리 집 닭들은 다들 꽤나 입이 무겁다.

얼마나 입이 무거운지 그 어떤 질문에도 침묵을 지킨다.

무슨 말을 해도 대꾸가 없다.

그 와중에도 이해 못 할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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