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Nov 27. 2023

해버렸어, 정말

초3과 초5의 합동작품

2023. 11.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는 너희가 정말 할 줄은 몰랐는데!"

"어제 우리가 분명히 한다고 했잖아. 엄마. 얼른 와요."


토요일 아침 9시가 넘어 일어나 거실에 나갔더니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세수를 하기도 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은 남편이 임용시험 감독을 하러 가야 해서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남편은 내게 5시에 깨워 달라고 했지만 원하지 않았는데도 4시에 눈이 떠져버린 것이다.

어쩔 때 보면 직장인인 그 사람보다 무직인 내가 더 그런 일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보통 시험이 아니잖은가.

중요하고도 중요한 시험이니 매사에 조심해야 했다. 미리 준비해야 했다.

5시 넘어 남편이 나가고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오디오 북을 듣다가 8시가 다 되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밖에서 뭔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평소처럼 책을 본다거나 둘이 게임을 한다거나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매는 주말 아침엔 유난히 더 빨리 일어나 퀴즈 대결도 하고 오목이나 알까기, 카드놀이, 마술쇼 이런 것들을 한다.

완전히 정신이 덜 깬 상태에서 최대한 방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미루고 싶어 누워 있는데 아들인지 딸인지(아마 둘 다 같이 살금살금 다가왔을 것이다.) 문을 빼꼼히 열어 보는 눈치였다.

물론 나는 아직 잠이 안 깬 척 가만히 있었고 말이다.

소리 안 나게 문을 살짝 닫더니 저희 둘이 뭐라고 속닥속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파서 나를 깨우러 온 건가 했다, 처음에는.

잠을 잔 것 같지 않고, 몸도 별로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자식들이 배고파한다면 또 말은 달라진다.

아이들이 문 밖에서 서성이다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갔을 때였다.

"엄마, 짜잔! 우리가 만들었어."

그때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차려져 있었다.

"이걸 너희가 만든 거야?"

"응, 우리 둘이 만들었지. 어제 우리가 그랬잖아. 토요일 아침에 우리가 엄마 밥 차려 줄 거라고."

"근데 정말 너희가 할 줄은 몰랐는데. 세상에! 편지도 있네."

"우리가 썼지. 맛있게 드세요."

각자 몇 마디씩 적은 그 편지는 자그마치 색종이를 하트 모양으로 오려 낸 것이었다.

깜찍한 것들 같으니라고.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담?

"야, 근데 너는 '먹어요'가 뭐냐, '드세요'라고 높임말을 써야지."

누나가 굳이 '반말'을 물고 늘어졌다.

나는 기쁨에 겨워 반말 그런 건 눈에도 안 들어왔다 물론.

"아빤 없어서 어떡하지? 사진 보내줘야겠다. 아빠 샘나겠다 그치?"

나는 잽싸게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아이들이 '엄마를 위해서' 차린 밥상이라고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자랑질'이라고 한다지 아마?

"다음엔 아빠 있을 때도 해야겠다."

딸이 한마디 했다.

새로 밥을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내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이들이 급히 전날 저녁에 남은 밥으로 차린 밥상이었다. 식은 밥이긴 했지만 그 뜨거운 사랑에 하마터면 난 입천장을 델 뻔했다.


"엄마, 주말에는 우리가 밥 차려 줄까?"

금요일 저녁에 딸이 난데없는 제안을 해서 난 별생각 없이 그러라고 대꾸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정말 이 남매는 한다면 하는 어린이들이구나.

"근데 엄마, 이거 다 안 익었을지도 몰라. 가운데는 잘 익은 것 같은데 가장자리는 열이 별로 안 닿는 것 같았어."

"잘 익었어. 안 타게 잘했네. 몇 단계로 한 거야?"

"처음엔 9로 하다가 탈까 봐 중간에 5로 줄였어."

"그건 엄마가 안 가르쳐 줬는데 잘했네. 계속 9로 하면 잘못하면 탈 수 있거든. 정말 너희 대단하다. 달걀 깨는 거 잘 안된다더니 잘 됐어? 알끈도 다 제거한 거야? 엄만 완전히 익힌 거 좋아하는데 잘 익었다."

"응. 내가 알끈도 다 제거했지."

평소 남매는 내가 요리할 때 관심을 많이 보인다. 참여도 종종 하는 편이다.

다 넘겨줘도 되겠어.

곳간 열쇠를 넘겨줄 날이 코앞이구나.

그런데, 달걀 껍데기가 음식물 쓰레기에 들어있다.

"아니 얘들아, 달걀 껍데기를 여기 넣으면 어떡해? 달걀 껍데기는 일반 쓰레기야. 엄마가 여러 번 말했잖아. 이게 뭐야, 다시 엄마가 분리 수거 해야 하잖아. 결국 엄마 일을 만들었네."

라고는, 기껏 정성껏 차려준 밥상 엎어버리는 그런 말 같은 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물론.

달걀 껍데기 그까짓 거, 아이들이 안 볼 때 조용히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으면 그만이지.

"너희 처음 한 것 치고는 정말 잘했다. 이제 주말마다 너희가 엄마 밥 차려줘도 되겠다. 겉절이 하는 것도 알려주고 나물 무치는 것도 알려 줄게. 밥 하는 것도 알려 줘야겠네. 압력솥밥은 진짜 쉬워."

"아, 그거 쌀 불려서 하는 거지?"

아들이 신 나서 말했다."

"꼭 불려야 하는 것 아니지만 불려도 좋지."

그동안 내가 항상 쌀을 불려서 밥을 해왔던 걸 허투루 보지 않았구나.


"엄마, 그동안 우리 밥 차려 주느라고 힘들었지? 해보니까 알겠어. 달걀 프라이 하나 하는 것도 어려웠어. 엄마는 다른 반찬도 많이 해 주는데 정말 힘들었겠다. "

아들했다.

기특한 것들 같으니라고.

이제 군대 가도  되겠어.

정말  이 남매는 사랑 그 자체다.

"역시 해보니까 엄마 속을 아네."

"엄마, 이제 우리가 자주 해 줄게요. 근데 어쩌지? 난 할 줄 아는 게 달걀 프라이밖에 없는데."

아들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엄만 우리 아들이 해 주는 거라면 날마다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어. 걱정 마. 다른 것도 배우면 되지."

아들은 달걀을 깨고 딸은 알끈을 제거하고 먼저 한쪽 면을 익히고 뒤집는 건 또 아들이 했단다.

이렇게나 분업이 잘 이뤄지는 남매라니!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줄든 너를 사랴.

어디서 이런 보물들이 왔을꼬.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 했겠다?

세상은 넓고 배울 요리는 많단다.

얘들아,

압력솥밥을 마스터 한 다음엔 냅비밥이다!



작가의 이전글 뺏기느니 먹어버릴 테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