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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5. 2023

바람이 분다, 전화해야겠다

안부전화

2023. 11.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며느리 사랑한다. 고맙다."

어머님이 또 고백하셨다.

"네, 어머님. 감기 조심하세요."

(그 어머님의 친아들이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애교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며느리는 저 말로 대답하고만 말았다.


엊그제는 봄날 같았는데 어제는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창밖에 휘청이는 나무들만 봐도 으스스 몸을 떨게 했다.

바람이 부는구나.

또 때가 됐다.

통화기록을 살펴본다.

직전 기록이 21일이다.

먼저 친정 엄마에게 당부할 일이 있어 친정부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니까. 게다가 그 시간(아침 8시 30분경)이 아니면 엄마는 일찌감치 밭에 나가 일하시느라 전화도 귀찮아 안 받으실 수 있었으니까.

안 받으신다.

다음은 시부모님께다.


"어머님, 날씨가 너무 추워요."

오랜만에 어머님 목소리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시가에 전화를 하지만 최근에는 계속 아버님 하고만 통화를 했었다.

어머님은 공사다망하셔서 통화하기 힘들다.

아버님에 비해 좀 더 사교적이고 바깥 활동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거의 집에 계실 때가 없어서 끼니 때가 아니면 거의 아버님과 통화를 하게 된다.

"그래, 잘 있냐?"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 어머님이 반가워하시는 게 느껴졌다.

"어머님,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날씨가 추우니까 무릎이 더 안 좋으시죠? 추울 때는 방도 따뜻하게 하고 계세요. 추우면 몸이 더 안 좋아지잖아요. 혹시 감기는 안 걸리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독감 예방 접종 하셨어도 이번에 독감 걸려서 2주 넘게 엄청 고생하셨어요."

"그랬냐. 사돈들 마스크 쓰시라고 해라. 올해는 독감이 더 심하다고 하더라. 엄마 무릎은 좀 어떠시냐? 우리 아들이랑 손주들도 다 잘 있냐?"

간만의 통화였으므로 서로 할 얘기가 많았다.

그래봤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 대화 주제는 거기서 거기였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너 저번에 감기 걸려서 걱정이 됐는데. 요새 너한테 전화가 없어서 내가 한번 전화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정말 어머님과 나는 2주 넘게 통화를 안 한 셈이다.

하지만 아버님과는 계속 통화를 꾸준히 해왔으므로 내가 시부모님을 모른 척 한 건 아니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이 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화드렸다고요. 전화할 때마다 어머님이 안 계시던걸요? 마다 어머님 친한 멤버 댁에 가셨다고 아버님이 그러시던데 맨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으세요? 식사 때는 집에 계시겠거니 하고 점심 때 해 봐도 안 계시고, 저녁 드신 다음에는 집에 계시겠지 하고 저녁 시간 이후에 전화드리면 또 저녁 드시고 다시 그 집에 가셨다고 아버님이 그러시던데요? 어머님, 제가 전화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저는 계속 전화드렸는데 어머님이 자꾸 놀러 가시고 안 계셔서 통화를 못한 거잖아요. 아버님 하고는 계속 통화를 해 왔다고요!"

라고는 꼬치꼬치 따져 물으며 대꾸하지는 않았다 물론.

며느리 전화가 뜸한 것 같아 은근히 기다리고 계셨나 보다.

아버님이 며느리에게서 전화 왔더란 말을 어머님께 전달하지 않으셨구나, 또.

아버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신 건가?

"아, 제가 전화드릴 마다 아버님이 전화받으시더라고요. 어머님 동네에 놀러 나가셨다고."

"그랬냐. 너 그때 감기가 심해서 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몸 아플 때는 전화 한 통도 그렇게 고맙지 않냐."

"그럼요 어머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말이라도 같이 살지도 않는 어머님이 같이 사는 어머님 아들보다 백배 천배 낫네요. 누구는 감기 걸렸다고 하면 그까짓 거 가지고 그런다고 엉뚱한 소리나 삑삑하던데."

라고는 시어머니 앞에서 친아들의 적절치 못한 대응을 고발하는 말 같은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신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렇죠 어머님. 아프면 나만 서럽고."

어머님과 나,

고부 사이에는 '아픈 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나마 서로를 조금 이해하고 안쓰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그저,

안부 전화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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