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머님의 친아들이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애교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며느리는 저 말로 대답하고만 말았다.
엊그제는 봄날 같았는데 어제는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창밖에 휘청이는 나무들만 봐도 으스스 몸을 떨게 했다.
바람이 부는구나.
또 때가 됐다.
통화기록을 살펴본다.
직전 기록이 21일이다.
먼저 친정 엄마에게 당부할 일이 있어 친정부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니까. 게다가 그 시간(아침 8시 30분경)이 아니면 엄마는 일찌감치 밭에 나가 일하시느라 전화도 귀찮아 안 받으실 수 있었으니까.
안 받으신다.
다음은 시부모님께다.
"어머님, 날씨가 너무 추워요."
오랜만에 어머님 목소리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시가에 전화를 하지만 최근에는 계속 아버님 하고만 통화를 했었다.
어머님은 공사다망하셔서 통화하기 힘들다.
아버님에 비해 좀 더 사교적이고 바깥 활동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거의 집에 계실 때가 없어서 끼니 때가 아니면 거의 아버님과 통화를 하게 된다.
"그래, 잘 있냐?"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 어머님이 반가워하시는 게 느껴졌다.
"어머님,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날씨가 추우니까 무릎이 더 안 좋으시죠? 추울 때는 방도 따뜻하게 하고 계세요. 추우면 몸이 더 안 좋아지잖아요. 혹시 감기는 안 걸리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독감 예방 접종 하셨어도 이번에 독감 걸려서 2주 넘게 엄청 고생하셨어요."
"그랬냐. 사돈들 마스크 꼭 쓰시라고 해라. 올해는 독감이 더 심하다고 하더라. 엄마 무릎은 좀 어떠시냐? 우리 아들이랑 손주들도 다 잘 있냐?"
간만의 통화였으므로 서로 할 얘기가 많았다.
그래봤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 대화 주제는 거기서 거기였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너 저번에 감기 걸려서 걱정이 됐는데. 요새 너한테 전화가 없어서 내가 한번 전화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정말 어머님과 나는 2주 넘게 통화를 안 한 셈이다.
하지만 아버님과는 계속 통화를 꾸준히 해왔으므로 내가 시부모님을 모른 척 한 건 아니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이 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화드렸다고요. 전화할 때마다 어머님이 안 계시던걸요? 날마다 어머님 친한 멤버 댁에 가셨다고 아버님이 그러시던데 맨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으세요? 식사 때는 집에 계시겠거니 하고 점심 때 해 봐도 안 계시고, 저녁 드신 다음에는 집에 계시겠지 하고 저녁 시간 이후에 전화드리면 또 저녁 드시고 다시 그 집에 가셨다고 아버님이 그러시던데요? 어머님, 제가 전화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저는 계속 전화드렸는데 어머님이 자꾸 놀러 가시고 안 계셔서 통화를 못한 거잖아요. 아버님 하고는 계속 통화를 해 왔다고요!"
라고는 꼬치꼬치 따져 물으며 대꾸하지는 않았다 물론.
며느리 전화가 뜸한 것 같아 은근히 기다리고 계셨나 보다.
아버님이 며느리에게서 전화 왔더란 말을 어머님께 전달하지 않으셨구나, 또.
아버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신 건가?
"아, 제가 전화드릴 때마다 아버님이 전화받으시더라고요. 어머님 동네에 놀러 나가셨다고."
"그랬냐. 너 그때 감기가 심해서 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몸 아플 때는 전화 한 통도 그렇게 고맙지 않냐."
"그럼요 어머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말이라도 같이 살지도 않는 어머님이 같이 사는 어머님 아들보다 백배 천배 낫네요. 누구는 감기 걸렸다고 하면 그까짓 거 가지고 그런다고 엉뚱한 소리나 삑삑하던데."
라고는 시어머니 앞에서 친아들의 적절치 못한 대응을 고발하는 말 같은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