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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4. 2023

너, 겨울 아이

향기로운 너

2023. 11. 23.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7년 넘게 키웠지만 하나로 시작해 화분 10개도 넘게 분갈이를 했지만 이맘때는 꽃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자고 철없이 지금 너는 피어나서.


스파티필름이 꽃을 피운 지는 일주일도 넘었다.

맨 처음 아스라이 흰 빛이 올라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느닷없게도 보였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 해에 첫 꽃을 피우는 시기는 대개가 설날 전후였다.

처음으로 한 화분에서 개시를 하면 분갈이를 해 둔 다른 스파티필름 여기저기에서 차례로 꽃을 피운다.

아직은 매운바람이 불 때, 그러면서도 따뜻한 봄날이 어서 오기를 조바심 내며 기다릴 즈음이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선 후 집안에 인간이라고는 나 혼자만 남는데 그나마 숨 쉬는 생명들이 많아 삭막하지는 않다.

대답은 들을 수 없지만 말도 종종 걸어 본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꽃을 보게 되는 날에는 기특하기까지 한 그 생명이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보다 나을 때가 있다.

너도 나처럼 겨울 아이구나.

겨울에 태어난 너, 아름다운 너.


정말 아무 상관도 없을 일이지만 이런 일 하나에도 나는 은근히 모든 일에 희망적이 된다.

그저 그 꽃은 필 때가 되어 피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른 꽃들은 다 시들고 져 가는데 그 와중에도 피어났으니 뭔가 좋을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하긴 꽃을 본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이 하나 생긴 셈이다.

꿈은 평범 그 자체였으나 해몽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다.

실망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탓하고 미워하고 원한을 맺고, 이런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집착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다는데,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데, 그리 썩 유쾌하지도 않은 그런 허상을 만들어 내는 일을 줄여 나가야지.

희디 흰 저 꽃 한 송이에도 이렇게 마음이 보드라워지는데.


 없는 네가,

대답없는 네가,

너 그대로인 네가,

그냥 나는 좋을 뿐.

그리고 너에게는 여느 인간에게서는 나지 않는 향기가 있어.

곁에 가까이 다가가면 느낄 수 있지.

그래, 향기로운 건 기분을 좋게 , 사람이나 식물이나.

사람도 가까이 다가가면 은은하게 향기를 풍기는 이가 있어.

적어도 나는, 악취 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네가 있어 나는 따뜻해.

본격적인 겨울이 닥치기도 전에 나는 그냥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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