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고 보챌 땐 언제고, 연락 두절하기 있기 없기?
닦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22. 10. 10.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기가 먼저 보자고 보자고 그렇게도 끈질기게 얘기하더니 벌써 며칠 째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거지? 경찰에 붙잡혀 갔나? 그동안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이렇게 여러 날 잠자코 있을 리가 없잖아. 하루가 멀다 하고 쪽지며 문자를 보내던 사람인데 말이야.'
연락이 끊긴 지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뭐에 홀린 듯 드디어 만나자고 극적으로 합의하게 되었다.
내 속마음은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 내가 한 번 나가 준다(?).'
였다.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씀이야.
가만 보면 사람이 적당히를 몰라.
지방직 면접시험까지 끝나고 7월 언제쯤이었나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고 나도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서서히 사람 행색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빛을 피해 쑥과 마늘의 100일을 견딘 곰의 인내의 시간보다도 더한 장수생의 동굴 속에서 철저히 내동댕이쳐진 세월을 지나온 자는 그럴 자격이 있다, 고 생각했다.
곰은 단지 사람이 되고 나는 공무원 사람이 되리니.
제일 먼저 수험 스트레스로 쪘던 7Kg을 어딘가에 다 보시하고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원래의 몸무게로 되돌아오는 쾌거도 이루었다.
임용되리, 한 번도 장수 공시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살아가리, 한 번도 '확찐자' 시절을 겪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발령받을 때까지 실컷 잠도 자보자, 놀고 싶은 만큼 놀아보자 , 무엇이 됐든 간에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며칠만이라도 살아보자, 그러자, 고 마음먹고...... 마음먹었으나 면소재지로 외출 한 번 못해봤다.
언제나 교통이 불편한 시골살이의 현실이 내 몸을 면소재지까지 끌고 나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나가면서 돌아올 걱정을 해야 했다.
7시 45분 아침 첫 차로 집을 벗어나도 저녁 7시 막차를 타고 복귀해야 하는 안타까운 운명이었다.
신데렐라는 밤 12시까지라도 실컷 놀 수나 있지.
나를 위해 호박 마차 따위를 선물해 줄 요정은 없었다.
아니 내겐 호박마차보다도 막차를 놓친 후 택시가 더 절실했다.
게다가 최종 합격자 필요 서류를 내느라 떼어 본 가족관계 증명서상에서 우리 부모님이 나의 친부모님인 것을 이미 확인해 버린 후였다.
신데렐라에게는 새어머니가 있었지만 내겐 친어머니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나 세상은 공평했다.
그 당시 나는 새벽 6시 첫차를 타고 시내를 배회하며 밤 10시 막차를 타며 청춘인지 아닌지 분간도 안 되는 내 어정쩡춘을 바람 쏘일 수 있는 도시 생활을 동경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도시 행정을 그리워했던 것은.
전원일기 김 회장님의 둘째 아들이 농사 잘 짓고 살다가 한 번씩 자신의 환경에 꿈틀대며 바깥 세계를 꿈꾸듯 나도 내내 부모님을 잘 도와 드리다가도 솔직히 가끔은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때문에 씨'가 기름을 들이부었다.
탈선 방화범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하기는 타이밍 하면 '때문에 씨'가 아니던가.
그래도 아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아직까지는 수입도 없고 부모님 그늘 아래 사는 처지였으므로 그나마 장마기간에 만나자고 서로 합의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그동안 마음 졸이며 근심의 밤을 보냈을 부모님에 대한 속죄의 마음에 나는 담배밭으로 향하곤 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담배를 피우고자 함이 아니라 담배일을 돕기 위함임을 거듭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처음 방문하신 분들의 임의적인 단정 혹은 오해를 금합니다.)
비가 오는 날은 담배 수확할 수 없으므로 잠깐 쉴 참이 생기는 것이다.
철저히 가정환경에 지배당해 버린 나란 사람, 아니 스스로 동화되어 버린 장수 공시생 출신이 세상을 사는 법이었다.
그는 무조건 자신이 내가 사는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속으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 빨리 만나고 싶은 만큼 더 많이 움직이면 되겠거니 했다.
장마철이지만 비가 언제 예보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므로 우리의 첫 만남은 각자의 스케줄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일기예보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비 예보가 있는 날이 길일이자 곧 손 없는 날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고, 한다고도 하지 않았으며 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고 감히 단정했다.
대략 7월 중순 이후쯤으로 생각하고 비가 온다고 하면 급히 만나자고 했다.
비 오는 날에 맞춰서 만나자는 사람이나, 그마저도 좋다고 동의하는 사람이나, 둘 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공시생 신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상식적인 사고 내지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혼자만 짐작한다.
애초에 그런 공통점이 화근이 되어 이 지경까지 이른 게 아니었던가.
일단 만나겠다고는 했는데 한편,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만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내내 졸고 있다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나는 융통성 없는 꽉 막힌 공무원을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잦은 심경변화로 융통성이란 것을 발휘했다.
만나겠다고 했다가 안 되겠다고 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한 번 만난다고 무슨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가...... 변덕이라고 하지 않겠다. 엄연히 사고의 유연함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만나자고 하던 사람이 연락두절이다.
보통은 그가 먼저 내게 쪽지를 보내고 문자를 보내왔었다.
한가한 사람이라 가능하다.
나는 거의 대부분 답장을 하는 식이었다.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극적 타결을 한 노조 파업 투쟁의 결과보다도 더 어렵사리 첫 만남의 날이 대략 잡히고 나자 그는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정말 감감무소식이었다.
손이 근질근질해서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할 사람이 아니다.
'단단히 잘못 걸려든 게 틀림없어. 내 이럴 줄 알았어. 처음엔 친절하게 대해주다가 나한테선 득 될 게 없으니까 그만 빠지려는 거로구만? 어쩐지, 맨날 문자는 보내면서도 전화는 한 번도 안 하고 목소리가 이상하네 안 좋네 이러면서 한 발 뺄 때부터 수상쩍다 했어. 최소한의 덜미는 잡히고 싶지 않았겠지. 분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선수 치는 거였는데.'
그보다 먼저 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게 새삼 억울할 지경이었다.
다시 한번 그가 사기꾼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가만, 그나저나 내가 잃은 건 뭐지?
다행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내 시간만 좀 허비한 셈 치고 깨끗이 잊자.
이제부터 뉴스를 잘 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공무원 합격자를 사칭하며 공시생 카페에서 여성 공시생만을 노린 일당 검거
이런 뉴스를 기다렸다.
그 어느 채널에서도 그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잊자고 했지만 도대체 뭘 잊겠다는 건지, 잊을 게 뭐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쪽지 든 자리는 몰라도 쪽지함 빈자리는 티가 난다더니 휑하니 텅텅 빈 쪽지함에 때늦은 배신감 말고 더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