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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1. 2023

프로 충동 구매러의 아내가 사는 법

일관성 있는 남자와 살기

2023. 11. 30.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거 알아?"

"알고 싶지 않아."

"모르지?"

"또 어디서 세일한대?"

"어? 어떻게 알았어?"

"블랙 프라이데이라느니 코리아 페스타라느니 설마 그런 거 말하려는 건 아니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이 양반이, 아무리 내가 사회생활 안 한다고 그런 것도 모르고 사는 줄 아시나.

난 이미 백 만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세일 하나 봐."

프로 충동 구매러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프로 제지러는 그 입을 다물게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었다.

"혹시 우리 필요한 거 있나?"

"하나도 없어."

"생필품 이런 거 안필요해?"

"필요해도 안필요해."

"잠깐만, 뭘 사지?"

"살 건 하나도 없어. 있는 것도 팔아치워야 할 판이야."

"잘 생각해 봐, 뭐가 필요한 지."

"생각할 필요도 없어. 살 게 없는데 무슨 생각을 해?"

"이거 진짜 싸게 파나 본데."

"가짜로 싸게 파는 거야."

"잘 보면 우리한테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필요한 건 없어."

"코리아 페스타래."

"그건 남의 나라 일이야. 신경 쓸 거 없어."


프로 충동 구매러는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모르신다.

그래서 만년 프로 충동 구매러이시다.

"어? 여기 세일하네. 나한테 톡 왔는데 내가 보내줄까?"

"아니."

"내가 보내줄게. 당신한테는 안 갔을 거 아냐?"

"안 왔어도 왔어. 보낼 필요 없어."

"일단 보내 줄게."

"바로 삭제야."

"잘 봐봐. 진짜 세일 많이 하는 것 같아."

"아무리 세일을 많이 해도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니까."

기어코 프로 충동 구매러는 내게 문제의 그것을 전송해 버렸다, 친절하게도.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소 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지 아마?

무슨 말을 해도 통 먹히질 않는다.

피차 마찬가지지만...


그러니까,

이런 거 말고,

난 관심도 없는 세일이니 블랙 뭐니 이런 거 말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충동구매욕구 말고,

이렇게 승화시켜 보면 어떨까?

생필품이 사고 싶을 때는 설거지를, 전자제품이 사고 싶을 때는 방 청소를, 맨날 입을 옷 없다고 옷타령하는 대신 빨래를, 이렇게 승화시켜 보자는 말이다, 이 양반아!


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라켓 배송으로 기필코 무료배송 금액을 맞춰 간편 결제를 해 버릴 양반,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세상은 넓으니 간헐적 해외 직구를 해 버리는 글로벌한 양반,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겨우 충동 구매 욕구를 사그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고 착각할 때쯤 하교하는 아이들에게 매일 현관 앞에서 택배 수거활동을 하게 해 주시는 양반,

주말 출근도 평일 출근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묵묵히 장바구니를 채워 놓는 양반,

이렇게나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그를 '프로 충동 구매러'로 임명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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