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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30. 2023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능청스럽기는

2023. 11. 2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안 좋은 소식이 있어."

가슴이 철렁, 했다.

결전의 날, 나는 어제 아드님이 어떤 대단한 속보를 들고 하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어쩌면 욕심이었다.)

어쩐지,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학교 파하자마자 당장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을 아이인데 어째 잠잠하다 했다.


"엄마, 아깝게 트로피는 못 받았어."

오목 겨루기에서 승리하는 모둠은 트로피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트로피를 못 받았다=졌다?

"괜찮아, 트로피 못 받으면 어때?"

나는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대했다.

"그런데 또 좋은 소식도 있어."

뭐지?

방금 안 좋은 소식 있다고 시무룩한 표정이더니, 금세 좋은 소식이라니?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 봐 변덕이 죽 끓듯 하는구나.

"트로피는 못 받았지만 금메달은 받았지롱."

"2등 한 모둠한테는 금메달을 주신 거야?"

"아니, 우리 모둠이 이겼어! 근데 트로피는 하나라서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가지기로 했거든."

"그럼 너희 모둠은 한 사람이 트로피랑 금메달도  가져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금메달만 다 받은 거야?"

"응. 우리 모둠이 오목에서 이겼단 말이지."

"우와, 정말? 우리 아들 축하해."

요것 봐라?

열 살짜리가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네?

"오늘 우리 모둠 OO가 안 와서 세 명이서 했는데 내가 두 번 했거든. 내가 두 번 다 이겼어."

"그랬어? 어쨌든 잘 됐네."

"아침에 엄마가 행운을 빈다고 했잖아. 그래서 행운이 왔나 봐."

"그랬나 보다. 넌 좋겠다. 이 금메달 자자손손 가보로 물려줘야지."

반나절만에 팔불출로 환골탈태한 엄마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물론 혼자서만.

"그거 초콜릿인데?"

"그런 거였어? 그럼 먹어 치워야겠네, 아쉽다. 평생 간직하려고 했는데."

"엄마, 파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목도 이겼는데."

"그래? 뭘로 할까?"

아들은 파티 남발주의자다.

기회만 있으면 파티를 열고 싶어 한다.

물론 요란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과자 한 봉지만 대령해도 함박웃음을 짓는 어린이다.

엄마의 저예산으로도 얼마든지 열어줄 수 있는 소박한 파티, 뒤탈도 없고 세상 건전한 기쁨의 파티, 이런 파티라면 일 년 내내라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참, 선생님이 과자도 주셨어."

아들 가방에서 자꾸만 뭔가 나왔다.

어제도 최대한 친구들과의 사교 활동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신 아드님이 자그마치 '과자'씩이나 되는 것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시고 집까지 온전한 상태로 모시고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냥 친구들이랑 놀면서 같이 먹고 오지 이걸 또 가져왔어?"

"엄마랑 같이 먹으려고 가져왔지."

"고마워. 우리 같이 먹자."

한참을 아들과 과자를 집어 먹다가 문득 딸 생각이 났다.

"근데, 우리 누나 몫 남겨놔야 하는 거 아니야? 누나가 너랑 제일 많이 오목 연습 해 줬잖아."

"그랬지, 참. 그러자."

이렇게 말하면서도 우리 두 사람은 과자로 자꾸만 가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과자의 형체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몇 개 안 남은 상황에서 '양심상'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 둘만 입 다물면 딸은 과자 사건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가족 멤버 간의 '의리'의 문제였다.

먹다 남은 부스러기라도 제 몫을 남겨 두었다는 데에 딸은 의의를 둘 것이다.

"다 먹고 이것밖에 안 남겼어?"

라고 다소 원망 섞인 말을 들을 각오만 하면 그만이다.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아들의 평소 신념에 과자 부스러기일지라도 누나의 간에 기별을 가게 할 것이다.(고 나는 어떻게든 애써 합리화했다.)


그나저나,

이런 깜찍한 것 같으니라고!

엄마를 속이다니.

연기가 제법인걸?

전리품 금메달 초콜릿을 봐서라도 눈 감아 주겠어.

어제저녁에는 네 멤버가 오손도손 모여 금메달을 4 조각내어 한 조각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물론 그것을 조각내는 그 성스러운 작업을 하신 분은 아드님이셨. 구구절절 (나만) 숨 막히는 오목 승리의 과정을 늘어놓으며 친히 멤버들에게 배달하는 이도 그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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