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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9. 2023

아는 맛, 등교하는 재미

엄마는 기다리기만 하란다

2023. 11.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어제도 전혀 사전예고 없이 친구들과의 친교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하교하신 아드님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말씀하셨다.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즉흥적으로 하교 후의 시간을 친구들과 노는 일에 다 소비하고 온 자신에게 엄마가 잔소리라도 할까 봐 복음부터 전하는 이 어린이,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선수 친다'라고 한다지 아마?

"아니 이 녀석이 엄마한테 연락도 없이 또 마음대로 놀고 왔네. 이렇게 연락도 없이 늦어지면 엄마가 걱정할 거란 거 알아, 몰라? 놀고 올 거면 아침에 엄마한테 확실히 말을 해줬어야지. 집에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안 오면 엄마는 얼마나 걱정되는 줄 알아?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늦게 오면 어쩌자는 거야? 왜 이렇게 엄마가 걱정을 하게 하는 거야, 응?!"

이라고는, 기껏 애써 쌓아 올린 친구들과의 친교활동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발언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린이는 놀아야지, 공부하는 거 아니야. 알겠지? 실컷 놀아."

라고 아이들과 눈만 마주치면 읊조리는 엄마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거의 매일 신나게 놀고 오는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은 단지 엄마의 바람 그대로를 실천했을 뿐이니까.


"엄마, 오늘 오목 준결승전을 했거든."

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들은 시시콜콜 학교에서의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라고 했으니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들의 모둠이 결승에 올라가게 되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 아닐까, 하고 나는 기원전 5,000년 경에 이미 짐작해 버렸다.

한참을 아들이 일장연설을 하더니 잠시 멈칫했다.

"엄마, 근데 내 말 듣고 있어?"

라며 중간중간 성실하지 못한 엄마의 경청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내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라고.


역시나,

그러니까, 10분도 넘게 미주알고주알 했던 내용의 실체는 아들의 모둠이 오늘 오목 결승전에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오목 경기는 몇 주 전에 예고된 것이었고 매주마다 연습과 대결을 통해 현재까지 이르렀다.

지난번에 '컵 쌓기 대회'가 예고되자마자

"실전처럼 하려면 반드시 컵을 사서 연습해야 되니까 컵 사주세요!"

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아들답게 오목 대회 일정이 잡히자 각종 영상을 통해 오목에서 이기는 기술을 터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열 살의 집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하여튼, 저 정신력으로 뭐든 하긴 할 것 같단 말이야, 지금 이대로만 쭉 가준다면.

아들은 엄마, 아빠, 누나를 최대한 참여시켜 긴장감 넘치는 실전 못지않게 생생한 현장감을 미리 느껴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주말 아침에는 학교 갈 때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 제 누나를 붙들고 오목 게임을 몇 판씩 해치우곤 했다.

그것도 모자라 영상을 찾아서 '오목에서 이기는 법' 혹은 '오목 잘하는 법', '오목 비법'등을 검색하며 반드시 승리를 거두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기도 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 내가 잘하면 내일 트로피 가져올 수도 있어. 엄마는 기다리고 있어요."

벌써부터 김치국물을 선불로 들이킨 아드님은 자신만만했다.

"그래, 우리 아들이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으면 좋겠네. 하지만 만약에 우승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알지? 2등도 대단한 거거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아들이 우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실컷 축하해 주기 위한 스케줄을 이미 머릿속으로 짜고 있었다.

"알았어."

아들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승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은근히 승부 근성이 있는 아드님은 허투루 게임에 응하는 법이 없으시니까.


느닷없는 단원평가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슬슬 학교 다니는 일이 시들해질 때쯤 한 줄기 구원의 빛으로 발표되는 각종 대회는 열 살 어린이가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다시금 의욕적으로 등교하는 힘이 된다.

'오늘의 급식 메뉴'만큼이나 이부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드님이 자그마치 오목 대회 결승전에 올랐다는데 엄마로서 뭘 해야 한담?

정화수 떠 놓고 100분 기도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미역국은 끓이지 말아야지, 최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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