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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1. 2023

 그래서, 음주측정기 하나 샀어

연말연시를 대비하는 공무원

2023. 12.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연말 돼 가니까 슬슬 음주 단속이 더 강화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연말이랑 연초는 그렇지."

"낮이고 밤이고 없다니까. 언제 갑자기 할지 몰라."

"이맘 때는 항상 그렇잖아. 대낮에도 갑자기 하고."

"그래서, 음주 측정기 주문했어."

"또?"


그 양반에게 언제나 살 구실은 있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그리고 입에는 차마 걸 수 없으니 부는 걸로, 음주 측정기...


"혹시 내 밥에만 다른 거 넣었어?"

작년에 다짜고짜 나를 의심했다.

아니 어찌나 압박하며 내게 따져 묻는지 나는 차라리 당황스러웠다.

수학여행을 가는데 아침에 운전기사님 음주 측정을 한 후 있길래 본인도 해 봤는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자기 몰래 나머지 멤버와는 다른 이상한(?)것을 넣지 않았냐는 둥, 자기 혼자만 나머지 멤버와는 다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줬냐는 둥, 믿도 끝도 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물론 마음은 굴뚝같다, 나머지 세 멤버와는 전혀 다른 그 무언가를 넣어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또 오해는 하지 마시라.

공사다망하시고 연일 과로에 시달리시는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식단에 근거한 영양식 내지는 보양식, 이런 것을 뜻한다. 인간적으로 박하수라도 따뜻하게 데워서 밥에 말아 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나를 의심하다니!

평소에 내가 그렇게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많이 했었나?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양반은 바로 음주 측정기를 하나 장만하셨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측정해 보라며 강요했었다.

그러나,

술이라고는 기원전 5,000년 경에 마신 게 마지막 음주였던 내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때 나만 이상 있었다니까."

"아마 이를 잘 안 닦아서 기계가 놀라서 그랬을 거야."

"무슨 소리야? 나 이 닦았어."

"그럼 왜 그러지? 난 음식에 아무것도 안 넣었어."

"괜히 찝찝하잖아. 다른 사람들은 이상 없는데 나만 그러니까. 그래서 이참에 좋은 걸로 하나 장만했어."

"술을 안 마시면 되잖아?"

"어떻게 안 마셔?"

"적당히 마시면 되지. 최대한 적게."

"나도 그러고 싶다."

"아니, 무슨 일 생기면 자기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무슨 술을 그렇게 먹여?"


점점 강화되는 음주 공무원 징계 소식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직장인이 우리 집에 한 명 있다.

술 그까짓 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상황을 나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음주 측정기까지 대동해야 하다니.

"술을 마시면 일단 차는 없다고 생각하고 절대 운전하지 마. 차라리 운동 삼아 걸어 다니든지."

근무지는 집에서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깝다.

"그래도 다음 날 출근할 때는 가져가야지. 점심때 또 내 차로 다 이동할 건데."

"술은 술대로 먹이고 또 운전까지 시켜? 아무리 옛날에 다 그러고 살았다고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래? 그 사람들이 걸어서 밥 먹으러 가든 달려서 가든 신경 쓰지 마. 차를 안 가지고 출근할 수도 있는 거지. 무슨 개인 비서도 아니고 정말."

나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답답하게 돌아가는 그곳 사정을 좀 알기 때문에 나의 맞장구가 아무리 호들갑스러워도 그 양반에게는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생각할수록 답답한 곳이다.

아니, 한심할 때도 있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걸로 사. 경찰들이 쓰는 걸로 비슷한 거 말이야."

"안 그래도 그랬어. 이게 제일 비슷한 거래."

이렇게 말하며 어느새 도착한 음주 측정기에 있는 힘껏 입김을 불어넣는 직장인이 있었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오지랖을 떨기도 전에 한 오백 년 전에 음주 측정기를 주문한 철두철미한 직장인이 있었다.

송구영신이라 했던가?

어떤 공무원의 송구영신은,

옛것은 보내고 새것을 들인다, 음주 측정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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