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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2. 2023

이모가 주유비를 주지 않은 죄

현물 품삯을 받고

2023. 12. 11.

< 사진 임자 = 글임자 >


"기름값 하라고 돈은 주셨어?"

"돈 받으려고 간 거 아니잖아."

"그래도 일을 시켰으면 그 정도는 줘야지."

"해 봤자 얼마나 했다고 그래."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가까운 거리 아니야.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 다 계산하고 따져? 남도 아니고 이모네 일인데 도와줄 수도 있는 거지. 남의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겠다, 나는."


사람이 살면서 모든 걸 다 계산하고 손익을 따지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물론, 남편이 내가 '벌이도 없는 주제에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걸 잘 안다.

하루 이틀 들어온 말이 아니었으니까.

이미 오만정이 다 떨어진 지 오래라 무디어질 뿐이다.


평소에 친정 일을 도와주고 올 때도 그런 식이다, 매번.

"어머님이 기름 넣으라고 돈은 주셨어?"

"요즘 기름값 비싸. 알긴 알아?"

"가족끼리도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어머님은 차가 그냥 굴러가는 줄 아시나 봐."

"요즘 하루 일당이 얼만데?"

"가족이라고 무조건 공짜로 일 시키고 그러는 건 아니야."

"어머님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니야? 아무리 가족이어도 일당은 챙겨 주셔야지."

결혼 후 10 년도 넘게 살았지만 저런 말을 들을 때면 매번 새롭다.

그리고 또 느낀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은 그런 사람,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너무 계산하고 따질 때는 욕지기가 날 지경이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인색한 사람 같고, 남편이 보기에 나는 무조건 다 퍼주는 사람 같다고 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남들에게 무언가를 나눔 할 때도 남편 돈을 들여 사서 주는 것도 아니고 농사짓는 부모님이 나눠 먹으라고 주신 것들을 나눔 할 뿐이다. 남편 부모님이 내게 준 것을 나눔 한 것도 아니다. 물론, 시어머니가 나눠 먹으라고 준 것은 말씀대로 따를 뿐이고 말이다.(어머님과 나는 성향이 비슷한 면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따지면 친정에서 가져다 먹는 오만가지들에 대해 그 사람은 제 값을 다 치르셨나?

더럽고 치사하지만 따져서 계산하면 누가 손해인데?

당연히 친정이 손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요일에 큰 이모댁에 가서 김장을 도왔다.

"이모가 김장을 해야 된다고 한디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다 교회 가서 할 사람이 없단다, 좀 가서 해 줄래?"

며칠 전에 엄마가 부탁을 하셨다.

남도 아니고, 이모인데,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남의 일이라 해도 한 번쯤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 점을 남편은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

이모댁이 서 너 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하지만 남편 입장에서 가는데만 5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는 굉~~~~~장히 멀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다.) 안부도 살필 겸 해서 순순히 응했던 것이다.

이모는 1년 전에 양쪽 무릎 수술을 하셨는데 입원해 계실 때 친정 부모님과 병원 한 번 다녀오고 한 번 더 가봐야지 하다가 일 년이 지나버렸다. 조카가 이모 안부를 살피는 일이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니까 일요일에 김장 도와주러 갔다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런 걸 남편에게 허락까지 맡아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에는 꽤나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었으므로 자칫하다가는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므로(이런 게 싸움 거리가 되나 싶기도 하고 어이없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말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남편이 취미로 당구를 치고 놀러 다니는 것은 통보에 가깝지만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아내는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이라니.

싸우는 일도 넌덜머리가 나고 그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유익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라는 말씀대로 종종 무기력한 대응만 할 뿐이다. 남편은 내 인생에서 일부일 뿐이지 전체는 아니니까 그런 일로 애면글면 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서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어째서 피한다고 했더라?

솔직한 내 마음은 그렇다.

예상외로 그렇게 하라고 했을 때는 놀랍기까지 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웬일이지?

지금 생각해 보니 '일당"이라든지 '기름값' 이런 것을 바라고 그런 거였나, 그런 생각도 든다.


맛있고 귀한 김장 김치 스무 포기, 조기 50마리, 농사지은 작두콩차, 레몬과 귤, 돼지고기 10kg, 미숫가루.

저것은 다 무어란 말인가.

고생했다며 이모는 바리바리 내 차에 저런 것들을 싸 주셨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직접 기른 레몬과 귤, 작두콩차였다.

"저거 돈으로 따지면 20만 원은 더 될 거다. 고기만 해도 얼만데. 김치도 한 포기도 안 되는 거 몇 만 원이야. 이렇게 크지도 않아. 양념도 이게 훨씬 맛있고 믿을 수 있지. 사람이 어떻게 날마다 무조건 계산하고 따지고 살아?"

유치하지만 이렇게 대응하고 말았다.

"이거 완전 유기농이야. 사 먹으려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비닐하우스에서 키워서 일 년 내내 레몬 딸 수 도 있대."

이 말은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건 별로더라. 그게 뭐야? 바깥에서 강하게 커야지. 맛도 없어."

나도 입이 방정이었다.

남편과는 최대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당장 제일 먼저 귤을 맛본 사람이 누구였더라? 어젯밤에도 한꺼번에 가지에 달린 귤을 다섯 개나 가져간 사람이 누구였냐는 말이다. 금고라도 사서 열쇠 채워놓고 싶다. 물론 '남의 편은 촉수엄금'이란 경고문을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아야 하겠지 마땅하고도 당연히.

다음 주에 시어머니도 무릎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먼저 하신 이모님에게 이것저것 여쭤보고 경과는 좀 어떠신가 그것도 좀 알아보려고 나선 길이었다, 사실.

자기 돈 1원이라도 나갔을까 봐?

솔직히 몇 시간 일해 준 것도 아닌데 무슨 일당 타령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최소한 주유비를 남편에게서 받아 쓰지는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차는 유지하는 데에도 돈 많이 들어. 보험료랑 수리비 이런 것은 생각 안 해? 공짜로 굴러가는 줄 알아?"

더는 긴 말 하고 싶지도 않다.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하기 힘들다.

경험상 말이 안 통하는 부분은 하루 종일 말해봐야 시간낭비다.

40 평생 딱 한 번,

하루 종일도 아니고 반나절도 안되게 이모네 김장을 도와드린 과보가 이렇게나 엄청날 줄이야.

5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고 간 게 화근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겐  고작 1 시간 30분에서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시가에 가서 몇 차례 내가 무보수로  몇 시간 김장을 하다가 밥을 하다가 설거지 따위 하는 일은 당연한가 보았다. 그런 건 계산하는 법이 아닌가 보다.

굳이 계산하고 싶다면 그런 체불임금에 대해 먼저 따져보자고 하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남편 입장에서는 저렇게 말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하지만 말하는 방식. 말투,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점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그  태도, 그게 달갑지 않다, 달갑지 않지만 내가 지은 과보는 피할 수 없으리니.


그렇게 계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굳이 지금까지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계산이 아직 덜 끝났나 보지?

나야말로 빨리 계산 깔끔히 하고 끝내버리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나도 똑같이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우리 사이는 계산을 끝마쳤을 것이다.

그렇게나 계산하기 좋아하는데 질질 끌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도 이것저것 따지느라 계산이 쉽게 안 끝나나 보지?

사람이, 너무 계산만 하고 사는 아니다.

나는 그렇다.

적어도, 이모는 이 사실을 평생 모르셨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도...

그나저나 이모네 김장 김치로 저녁 먹을 때 남편이 굴까지 넣어 만든 배추김치를 몇 접시 비웠더라?

얼마치나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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