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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3. 2023

친정 아빠가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하셨다

강요받고 싶진 않은데

2023. 12.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래서 너희는 못 간다고?"

"응."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믄 못쓴다."


며칠 전 친정에 갔을 때 아빠에게 이기적이란 말을 다 들었다.

남편에게 듣는 것과는 또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남편에게도 말도 안 꺼냈다.

"거기까지 뭐 하러 가? 왜 가?"

라는 반응을 보일 게 뻔했으니까. 본인은 절대 안 갈 거고(물론 같이 가자고 할 마음도 전혀 없고, 만약에 가더라도 나 혼자만 갈 거니까)  왕복 하루가 다 걸릴 거리니 굳이 가야 하느냐고  반드시 되물을 사람이니까.

아니 그런 건 둘째 치고라도 매일 일에 치어 사는 직장인인데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인데 그 앞에서 할 소리도 아니었다. 남편 친동생도 아니고 남의 집 사촌 동생 결혼일 뿐이니까.. 세상 사람들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


이번 주말에 사촌 남동생의 결혼식이 있다.

나와는 띠동갑도 더 넘게 나이 차가 날 것이다.

내가 대학 다닐 적에 할머니와 작은 아빠 댁에 갔을 때 그 동생은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게 가르마를 타서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젤이든 무스(무스란 게 한 오백 년 전에 존재했었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든 헤어 용품으로 깔끔하게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던 아이였다.

그 꼬맹이가 장가를 간단다.

아니, 그 녀석이 언제 커서 벌써?

작은 아빠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셨다.

클릭을 하면서도, 분명히 작은 아빠 이름이 맞고 지금쯤 청첩장이 올 때도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이건 보이스 피싱은 아닌가 하며 미심쩍은 마음 가득 담아 열어 보았을 때 과연 그 성인 남성은 그 꼬맹이가 맞았다.

어릴 적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내 눈에는 아직도 애 같았다. 아니, 그냥 애로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옛날에 결혼할 때도 친척 어른들은 그런 느낌이셨겠지?

그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는데(아마 서른도 안 됐을 것이다, 아마 많아야 서른 일 것이다) 뭐 하러 벌써 결혼하느냐고,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하라고, 결혼하는 순간 모든 게 복잡해질 예정이라고, 아직 시간은 있다고, 자꾸 뭐라고 말해주고만 싶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한낱 큰아빠의 딸일 뿐인 내가 말이야.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감히 남의 일에 참견을 하려고 하는지...


"그러믄 못써. 이참에 가서 친척들 얼굴도 보고 그러는 거제. 나 편하자고 그렇게만 살믄 못쓴다. 물론 멀어서 힘들긴 하겄지만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 누나가 가서 축하해 주고 그러믄 좋제. 그럴 때 아니면 언제 형제간 끼리 얼굴 보고 살겄냐. 이참에 가서 다 만나고 그러믄 좋을 것인디. 사람이 너무 이기적으로 살믄 못쓴다. 이렇게 자꾸 빠지고 그러믄 점점 더 볼 일도 없어.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냐. 세상이 너무 각박해. 다 편하게만 살려고만 하고. 형제간 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아빠의 훈계말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물론, 구구절절 틀린 말씀 하나 없다.

하지만,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가면 좋겠지만, 사정상 못 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빠.

그러나 이런 말은 아빠에게 절대 용납되지 않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이번 주말 아빠에겐 조카의 결혼식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부다.

어느 면에서는 아빠가 꽉 막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빠 말씀이 다 맞고 가능하면 같이 가서 축하해 주면 좋긴 하겠지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잖은가.

아빠는 사촌 동생 결혼식에 불참하는 딸을 이기적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셨다.

"사람이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 돕고 그렇게 살아야지. 당장 귀찮아서 편하자고 안 간다는 게 말이 되냐. 사람이 이익만 보고 살려고 하믄 못쓴다. 가끔은 내가 손해도 볼 줄 알고 그래야제. 항시 손해 보고 살믄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양보한다, 손해 본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야제 사람들이 다 이익만 따지고 살믄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 그냥 내가 남보다 조금 손해 본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믄 편한 것이여."

언제나 우리를 키우면서 하시던 말씀을 오랜만에 들었다.

그래, 나도 모든 일에 악착같이 손익 따지면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도 아닌데, 아빠 말씀도 옳고, 동생이 조금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안 가고 싶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아빠는 나보고 무조건 이기적이라고만 하신다.

가족 간의 단합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분이 아빠다.

남들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봉사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빠다.

아빠는, 좀 그런 분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 정도까지는 아니다.

무조건적이지는 않다.

아빠도 잘 알고 계실 텐데.


아빠 생각이 아무리 옳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내가 자식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강요하는 건, 그것도 좀 아닌 거 아닌가? 하고 혼자만 생각할 따름이다.

아이고, 아직도 사촌 동생들 셋이 남았는데 만에 하나 그들이 다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이 과정을 또 거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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