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Dec 14. 2023

평균 연령 65세들의 나들이

일단 차를 구한다

2023. 12. 13.

< 작품 임자 = 합격이 >


"형수, 내가 차 한 대 불렀소. 다 같이 모여서 갑시다. 어차피 따로 가도 차비는 들 것이고 같이 가면 좋지 않겄소?"

당숙이 말씀하셨다.

"겨울이라 날씨가 어쩔지 몰라서 별 말 안했는디..."

엄마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나중에 부모님 얘기를 들어보니 그냥 조용히 두 분만 다녀오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작은 아빠도 이곳 근처에 사시는 다른 친척들에겐 알리지도 않으셨다.

과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멀리 결혼식에  가셨다가 고생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조카 결혼식에 시골 어른들이 총 출동하게 생겼다.

당숙들과 당숙모들로 구성된 평균 연령 65세 청년들의 서울 나들이, 이게 다 조카 덕분이다.


"작은집 당숙모가 OO 결혼식 하는데 질부가 말도 안 했다고 서운해합디다. 나중에 당숙모한테 말 잘하시오."

순식간에 메신저로 변한 당숙은 엄마에게 (나에게는) 작은집 할머니의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눈이라도 많이 오고 하믄 성가신께 말 안했제. 아직 날짜도 있고. 내가 같이 가자고 하겄소 어쩌겄소, 가까운 데도 아니고 하루 걸려서 갔다 와야 된디."

시골에서 어른들이 자그마치 서울까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친정에서는 기원전 5,000년 경부터 그렇게 애경사를 치러왔었다.

일종의 학습된 애경사라고나 할까?

당연히, 무조건 가는 거다.

아빠는 아빠의 사촌 동생들의 사돈과 사돈의 자식의 애경사까지 챙기시는 분이다. 그런 일을 아주 중요시하신다.

내 항렬의 사촌들은 오히려 대부분 시큰둥한데, 사정이 있으면 모임에 빠지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언제나 적극적이시다. 매년 지내는 시제에도 두세 군데 산을 오르는 분들은 다들 연로하신 어른들이다. 이 모든 게 윗대 어른들 선에서 다 끝나고 말 거라며 가끔 한탄 섞인 말씀도 하신다. 자식들에게  무작정 강요할  수만도 없는 일이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은근히 서운함을 드러내시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형제간에 우애라든가 결속력, 단합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고 혀를 차신다 .

매우 경사스럽지만 솔직히 아주 성가시기도 하고 고생스러운 여행길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러나 우리 친정집 친척 어른들은, 그러니까 단합이 아주, 그것도 굉장히 잘 되는 편이다.(라고 항상 느껴왔고, 지금도 여전하시다, 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님은 둘째 오빠네와 함께 같이 올라가실 예정이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요즘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겨울 날씨라 부모님은 은근히 속을 태우고 계셨다.

셋째 작은 아빠의 첫째가 결혼을 한다고 선포한 이후부터였다.

만에 하나 결혼식에 갔다가 눈보라라도 몰아치면 어쩔 것인가, 괜히 다른 친척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서다.

그래서 갈 사람은 알아서 가도록 선택권을 준 것인데 그것을 또 서운해하는 분이 계셨다.

조카의 결혼식이었다, 자식의 결혼식이 아니라.

물론 많은 친척들이 상경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면 좋긴 하겠지만, 무조건 강요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까(하지만 아빠는 내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시긴 했었지.) 중간에서 부모님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입장(나에게만 아빠는 이래라 하고 선언하셨지)이었다.

부모님은 급히 계획 수정에 들어가셨다.


둘째 오빠네와 당일 아침에 같이 출발하기로 했던 것을 다른 친척들과 어울려 가게 될 운명에 놓이면서 엄마는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기 시작하셨다.

"그라믄 떡도 쪼까 맞춰야 쓰겄고, 귤도 한 박스는 있어야 쓰겄고, 물도 사야 쓰고 그래야겄다. 아침밥은 뭣으로 해야 쓸거나?"


결혼식에 가지 않는 내가 그런 일을 맡았다.

일방적으로 할당받았다는 말이 맞다.

어른들이 가시면서 드실 음식을 챙기는 걸로 말이다. 새벽부터 도대체 어떤 걸로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나. 아침 일찍 출발하니 다들 빈 속으로 오실 텐데. 간단히 빵으로 해결하고 싶지만 그런 걸 용납하지 않는 분이 아빠다. 하루니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내 머리가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간식으로는 또 뭘 챙겨야 하나. 어쩌면 엄마는 이런 일이 불편해서 처음부터 두 분만 가시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내일모레 칠순이다. 몸도 아프고 기력도 예전만 못하시다.

예로부터 우리 집안 경사를 치르던 방식 그대로 3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같은 방식으로 결혼식을 준비하신다, 조카 결혼식을.

명색이 우리 부모님은 큰 아빠 큰 엄마시다.

당연히 이역만리라도 조카 결혼식이라면 참석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아빠이시고 숙명처럼 그 뒤를 다를 수밖에 없는 엄마이시다.

하필이면 그 고난길에 딸인 내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해서 살짝 내게 마음 상하신 분이 아빠다.

가족 간의 단합, 결속, 우애, 뭐 이런 것들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고로 여기는 분이 아빠라서 나는 종종 질릴 때가 있기도 하다.

개인보다는 단체 우선주의, 나보다는 가족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아빠라서 그동안 이래저래 부딪친 적도 있었다. 아빠는 가능한 한, 최대한 모든 일에, 많은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시고, 나는 적당히, 뭐든지 어느 정도껏만 하고 싶은 사람인데 아빠는 그것을 못마땅해하실 때가 있다.

그냥,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 그만 아닌가?

비단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아빠 방식이 무조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내 방식이 무조건 다 틀린 것도 아니고 그냥 그저 두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일 뿐인데 말이다.


"엄마, 토요일에 눈 온대!"

"정말? 좋겠다. 너희 눈사람 만들 수 있겠네!"

신나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주말 날씨를 알려주는 아들 말을 듣다가 불현듯 그날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어쩌지? 친척 어른들이 다 같이 먼 길 결혼식에 가셔야 하는데...

아이들이 눈 구경을 하며 신나게 놀 생각을 하면 눈이 왔으면 좋겠고, 결혼식을 생각하면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고, 이를 어쩐다?


작가의 이전글 친정 아빠가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하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