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자들의 잘못된 만남
그 김밥이 용했나?
22. 10. 13.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 다음에 또 한 번 만나고 싶은데요. 다음엔 제 쪽으로 오는 건 어때요? 괜찮죠?"
그는 '외모지상주의자'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를 어째?
그가 외모지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외모지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꽝, 다음 기회에'
아니, 그다음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나이는 서른이었지만 내 두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때문에 씨'는 있던 욕심도 내려놓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보아도 전혀 욕심나게 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완전한 무소유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수 억만 겁의 생을 다시 태어나고 만나야 '견물생심'의 마음이 싹 틀까?
애초에 우리는 맞선을 보기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서로 무슨 기대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나야말로 뭘 그리 크게 기대했더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내외하기 시작했다.
버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다른 좌석에 앉아서 내내 말없이 어색하게 있다가 하는 첫마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이건 뭐
"저 이번에 내려요."도 아니고
'보자마자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다는 막말을 할 때는 언제고 뭐 하러 또 보자는 거야?'
장담하건대 공무원 시험에 '말하기 영역'이 있었다면 그는 다시 한번 과락을 면치 못하였으리.
맹세코 그날 도시락으로 준비해 간 김밥에는 그 어떠한 짓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물질을 첨가했다거나 마법의 가루를 뿌렸다거나 하는.
처음 그가 내뱉은 망언을 미리 예상했더라면 맨밥도 융숭한 대접이다.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다.'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의 말투나 나를 대하는 태도, 분위기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못하다.'이런 의미에 더 가까웠다고 직감했다.
그러나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은 미워하되 그 입은 미워하지 않으려고 만나자마자 찬물 끼얹는 그에게 내 몫의 김밥까지 과감히 양보했던 것이다.
고향에서 거의 30년을 쭉 살다시피 한 나는 항상 만나는 사람들이 그만그만했다.
그러던 중에 생각지도 못한 타 지역 주민을 대면하니 모든 면에서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 그냥 끝까지 안 보겠다고 했어야 했어. 남동생은 친남동생 하나로도 차고 넘쳐. 남의 동생까지 굳이 알아서 뭐 할 거야?'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문화충격까지였다.
모를 일이다. 한동안 인간과의 접촉이 아주 뜸했던지라 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고립된 생활의 후유증이 이렇게나 크다.
이래서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공무원 시험 마친 공시생은 팔도 유람을 하란 말이 있는가 보았다.
솔직히 나는 너무 좁은 세상에 살고 있긴 했었다.
그를 만남으로써 공무원 합격자 관광 날에 만난 그 젊은이는 이 젊은이와 전혀 상관없음이 밝혀졌다.
애먼 남의 집 귀한 아들에게 괜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의심만 한 보따리 했었다.
그나마 나의 유일한 동기였는데 말이다.
찌뿌둥한 하늘 아래에서 초췌하게만 보이는 그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가.
믿기 힘들지만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다음에 또 보고 싶어요. 다음엔 제 쪽으로 와요."
라는 말이었다.
다 계획이 있었구랴?
그때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그가 나의 그림자가 기꺼이 되어버릴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서로 '외모지상주의자'임에 틀림없었기에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이어야 했다.
머리로는 저렇게 생각했으나 대답은 당황스러우리만치 과속하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몸소 이곳까지 와 주신 그 성의를 생각해서
"그럽시다."
망설임 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