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미 42라고 발작을 일으키듯 그 숫자가 깜빡거리던 순간, 나는 이미 슬픈 예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거 아빠가 아니야?"
"아니. 이번엔 엄마가 걸렸어. 옛날에 아빠가 걸렸을 때는 뭐라고 하더니 엄마가 걸리니까 별소리 않고 그냥 엄마가 돈 낸다고 하고 아무 말 않더라."
"뭐야? 엄마가 과속을 했단 말이야?"
아이들과 그 양반은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하고 있었다.
고마 해라, 많이 했다!
저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염장 지른다'라고 한다지 아마?
본인도 전과자면서 지금 꼬투리 잡았다 이거지?
아침에 느닷없이 남편 이름이 뜨면서 전화가 왔었다.
둘 사이에 딱히 전화까지 해서 할 말은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전날 사이도 틀어진 상태였으므로 더욱 불길했다.
또 또 게다가 먼저 카톡을 보내온 걸 흘낏 봤을 때 이미 나는 사태 파악을 마쳤다.
지은 죄가 있는 죄인은 얌전히 행동해야 했다.
나도 그런 눈치쯤은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 어디야? 그날 어디 갔었어? 과속 걸렸던데. 내가 보낸 거 봤어?"
라는 말로 시작해 그 양반은 나를 죄인 다루듯 했다.
이미 지난 일 파헤치면 무엇하나.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하나.
"그게 무슨 소리야? 안 다니던 길이라 내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지. 살짝 넘었는데. 그러는 댁은 옛날에 아파트 장애인 주차구역에 버젓이 하루 이상 주차해 놔 가지고 딱지 끊었잖아! 그때 얼마였더라? 10만 원이었던가? 아무리 주차 자리가 없어도 그렇지. 설사 그렇게 주차했더라도 얼른 다시 가서 빈자리에 주차했어야지. 그렇게 과태료를 내고 싶었어? 10만 원이면 큰돈이야. 내 딱지 두 배네. 적어도 나는 장애인 주차 구역에는 주차 안 해. 과속한 건 잘못한 건 맞지만 내가 생각도 못한 곳이라 순식간에 일어났어. 누구처럼 버젓이 경고문까지 붙은 그런 자리에 불법 주차 같은 건 안 했다고! 누구처럼 60이 제한 속도인 곳에서 100 이상으로 간 것도 아니고 30 구역에서 42로 간 것뿐이라고! 학교도 없는 것 같던데 왜 거기가 30인지 모르겠네. 그런 데가 30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라고는,
본전도 못 찾을 소리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제한 속도를 넘긴 건 분명히 내 잘못이니까.
신경 쓰고 운전한다고 해도 마구니가 끼면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하는 법이니까.(라고 아무리 변명한다 한들 구차해질 뿐이었으니까.)
아무리 어쩌네 저쩌네 해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금액으로 따지나 횟수로 따지나 그 양반이 더 했으면 더했지 절대 내가 능가하지 못한다.(라고, 치사하게 마지막까지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