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an 17. 2024

두 배로 받을 수 있었다는 공무원의 미련

2024년에도 잊지 않았구랴

2024. 1.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깝다, 당신이랑 둘이 받으면 두 배로 받을 수 있는데."


나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땐 대꾸 안 하는 게 상책이다.


또 입이 방정이었다.

내 입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정근수당 언급이 화근이었다.

"1월이니까 정근수당도 나오겠네?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생각만 하고, 그냥 말이 나오려고 해도 안간힘을 써서라도 내뱉지 말았어야 했다.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얼른 분위기 파악을 하고 삼켰어야 옳았다.

정작 근무할 때는 정근수당에 전혀(아니 거의?) 신경도 안 쓰고 살다시피 했는데 일을 그만두고 나니 왜 그 달이 기다려지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내 것도 아닌 것을 말이다.

그때는 중간중간 나오는 그런 돈은 무조건 대출을 갚는 데 쓰다시피 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맞벌이 시절에 대출을 많이 갚은 셈이기도 했다.

내가 근무하던 곳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조차 안 난다.) 남편이 근무하는 그곳은 예로부터 월급날에 정근수당이 나왔다. 그러니까 정근 수당이 나오는 달은 제법 큰 액수가 입금된다.(그 정도 금액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9급 공무원 시절부터) 물론 통장에 잔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올해 1월 17일이 기다려졌다.

물론 남편이 일해서 받게 될 월급이다.

1월이니까 정근수당이 나오겠거니, 그냥 별생각 없이 남편에게 한 말이었는데 그가 잊었던 빚을 독촉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휴, 진짜 아까워. 당신도 일 그만 안 두고 계속했어봐. 그럼 정근 수당도 두 배잖아. 1월 하고 2월만 되면 너무 아까워. 정근수당하고 명절휴가비 두 배로 받을 수 있었잖아. 그러면 그 돈도 무시 못하는데."

더는 대꾸할 말도 없고, 이미 지난 일을 자꾸 끄집어내는 것도 넌덜머리 나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대꾸를 한다 말인가.

그냥 그 사람 혼자 하는 푸념이려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

비록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 월급을 받지는 않지만 다른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부인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고 나는 여전히 그를 의심하고 있다. 의심하게 만든다, 의심이 된다 그냥.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그는 기본적으로 월급을 받아 오고 나머지 오만가지도 다 하는 아내를 바라왔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다가 다른 여자들은 시부모까지 모시고 살아. 당신은 정말 편하게 시집살이하는 줄 알아."

라는 듣고도 믿기 힘든 말까지 서슴지 않고 곧잘 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직장을 놓고 월급과 정근수당과 명절 휴가비와 연가보상비 이런 것들은 놓은 대신 다른 것들은?

지금 본인이 누리고 있는 것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하다손 치더라도 그 자신이 만끽하는 다른 어떤 여유로움은 다 무어란 말인가?

둘 다, 모두 다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라니까, 어쩌면.

나보고 항상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정작 누가 이기적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단지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이기적인 것인가?

우리 부부는 각자 이기적이란 말의 의미를 본인의 잣대로만 기준 삼아서 문제인 것 같다.


물론 그 사람 마음을 이해하고 그 심리적 압박과 책임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만 나라고 해서 마냥 생각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만 있다면, 아이들도 방치하고 살림도 내팽개치고 그저 놀고만 있다면 그가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비난받을 짓을 하는 거'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말이다.

오로지 경제적으로 수입이 없는 처지라고 해서 함부로 말하고 오직 그런 면에서만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드는 모습에 나는 이미 질릴 대로 질렸단 말이다.

내 말이 옳은지 네 말이 옳은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르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그게 가능할지 그것도 의문이다.

언제까지 이 관계가 지속될지는 더더욱 의문이고 말이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다.

어쩌면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작가의 이전글 똑같은 날에 하면 오죽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