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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6. 2024

똑같은 날에 하면 오죽 좋아?

고모만의 희망사항

2024. 1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러니까 애초에 조카의 어린이집 방학이 다른 어린이집 방학과 날짜가 달라서 생긴 일이었다.


동생의 아들은 7살이고 둘째 오빠네 딸은 6살이다.

둘은 만나면 꽤 친하게 지내고 잘 어울려 놀곤 했다.

둘 다 외동이라 그런지(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성별이 달라도 그동안 혼자서만 지내던 설움이라도 달래듯 헤어질 시간이면 울고 불고 그렇게 서러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빠네 딸의 겨울 방학이 연말이었고 동생네 아들의 겨울 방학은 연초였던 게 문제였던 것이다.

내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우리 지역은 대개 비슷한 시기에 방학을 했던 것 같은데 두 조카는 사는 지역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방학 날짜가 달라서 동생의 아들은 오빠네 딸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와야만 같이 놀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동생 아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있다가 오빠네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 시간도 오후 4시였던 거다.

엄마가 몸이 불편하신 것도 불편하신 거지만 나도 '고모로서' 조카 일생에 딱 한 번(밖에 되지 않을 경험)뿐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 집 가정방문을 기꺼이 환영했던 것이다.

게다가 올케도 직장생활을 하니 매일 휴가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인데 얼마나 애가 탈까 싶어서 말이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정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워라밸은 무슨 얼어 죽을 워라밸이란 말인가.

당장 내 자식 방학 중에 마음대로 휴가도 못 내는 판국에.

출근은 해야 하지, 애는 방학이라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도 안 가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자식도 길러야 하고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 부모는 이런 상황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만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다행히 친가나 외가에 돌봐줄 사람이 있다면 급한 대로 맡길 수라도 있겠지만 전혀 그런 사정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동생의 아들과 놀아주기로(물론 조카가 고모와 어울려 놀고 싶어 하는지 어쩐 지는 모른다)했던 것이다.

아들은 잘 놀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올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한테 맡기는 것보다야 그래도 고모가 더 낫겠지?

"고마워요, 언니. 폐 끼치는 것 같네요."

그녀는 나를 언제나 언니라고 부른다.

나는 호칭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고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정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 듣기도 좋아서(나는 여자 형제가 없었으므로) 굳이 호칭을 정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폐는 무슨,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내가 만약 반대 입장이었다면, 그녀에게 부탁했더라면 그녀도 흔쾌히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우리 아이들이 방학만 하면 자기 집으로 보내라고 아우성이었다.

다행히 조카는 우리 집을 제 집처럼, 아니 제 집보다도 더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까불기는 하지만 개구쟁이이긴 하지만 그저 성격이 밝고 매우 활기찬 어린이일 뿐이다.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런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해서, 컨디션이 최상이어서 많이 활동적인가 보다, 새로운 환경에 놓여서 들떠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오고 싶다던 고모네 집에 와서 신나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거슬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조카가 아주 아주 에너지 넘치는 아이라는 걸,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기원전 5,000년 경에.


까불고 장난치고 마구 휘젓고 다녀도 그저 귀엽기만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오래되어 많이 희미해졌지만 분명히 있긴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오랜만에 닥쳐서 처음엔 잠시 멍해졌을 뿐,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한 볼이, 땀을 뻘뻘 흘려대는 이마가 그저 예쁘기만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다, 맞아.

고슴도치도 제 조카는 함함하다더니, 똑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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