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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5. 2024

어린이집 방학에는 온 친정 친구가 필요하다

친자식 방학보다 더 무서운 것은?

2024. 1. 14. 아들이 접은 부처님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이고, OO이 온다고 한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동생이 아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친정에.

그러니까 엄마의 막내아들과 엄마의 손자가 같이 온다는 말이었다.

동생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 부랴부랴 오게 됐다고.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손자가, 손자가 할머니를 시름에 잠기게 했다.

고작 7살짜리가 말이다.


"엄마, 근데 왜 한숨이요?"

손주들을 예뻐하시는데 왜 그 예쁜 손주가 온다는 소식에 저렇게 한숨이실까?

"어린이집 방학이라고 여기다 며칠 두고 간다고 하더라, 아이고."

그러니까 조카는 어린이집이 방학이라 집에 있어야 하는데 출근을 해야 하니까 동생 내외가 계속 집에서 볼 수가 없으니 친가에 며칠 맡기겠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째야 쓸거나."

엄마는 진심으로 심란해하셨다.

손주가 예쁜 건 예쁜 거고 그 뒷바라지(라기보다는 뒤치다꺼리)를 어떻게 하나 싶어 지레 걱정이신 거다.

첫날밤에는 제 부모가 함께 있으니까 무사히(?) 넘어갔고 다음날 제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해도 (할머니 심란한 속도 모르고 순진한 그 조카는) 끝내 부모와 동행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아들 며느리가 그들의 아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강력히 의심된다.^^)

문제의 그다음 날 아침,

정말 아침 일찍이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일어났냐? 밥은 먹었냐? OO이가 고모네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하더라."

조그만 게 보통이 아니란 말이야.

하긴 할아버지 할머니랑 노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형 누나랑 노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생각해 보니 그 조카가 전부터 고모네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 불렀던 일이 생각났다.

아직 우리 집에 한 번도 안 온 친정 멤버가 그 조카다.

그 조카만 가정 방문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우리 집에 오고 싶대?"

"너 OO이 좀 데리고 가서 같이 놀아주다가 오후에 오빠네 집에 데려다 줄래?"

엄마는 과감히 그 고난의 십자가를 내게 넘겨주셨다.

엄마 몸도 불편하신데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았어."

"느이 애들이랑 같이 좀 놀라고 해라. 언제 올래?(=제발 부탁이니 최대한 빨리빨리 오너라= 축지법이라도 배워서 당장 날아오너라=한시가 바쁘다= 절대 지체해서는 아니 된다.)"

나도 가겠다고는 했지만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카는 아주 개구쟁이다.

우리 애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린이다.

"얘들아, 엄마가 외할머니 집에 가서 OO이 데리고 올게. 어린이집이 방학이라 며칠 있다 갈 거래. 오면 같이 놀아줘. 알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세 멤버 중 앞으로 닥칠 고난을 전혀 짐작조차 못했다.

까분다 까분다 해도 저희 집도 아닌데 그래도 조심하겠지, 남의 집이니까 덜 까불겠지, 어려워하겠지,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이 내게 있었다.

엄마는 진작에 조카를 데리고 짐을 싸서 마당에 나와 계셨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조카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씻고 겉옷을 벗고 양말도 벗어던지더니 내복 바람으로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것도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오른손으로를 머리를 받치고 말이다. 이내 거실 바닥에 있는 온수 매트 위로 벌러덩 눕더니 활개를 치고 놀았다.

방 문이란 방 문은 죄다 열어보고 참견을 다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내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아들이 종이접기도 해 주고 풍선으로 강아지랑 칼도 만들어주고 같이 쿠션을 던지고 베개를 던지고 놀더니 칼싸움을 하고 과자를 먹다가 배를 깔고 누워서 영상 시청을 하셨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엄마, OO이 언제 집에 가?"

딸이 먼저 불만을 제기했다.

"엄마, OO이가 너무 귀찮게 해."

무던한 성격의 아들도 더는 참지 못했다.

친정 근처 둘째 오빠네 집에 데려다 주기로 한 시간은 오후 4시다.

그 집에도 딸이 한 명 있는데 이 남자 조카보다 한 살 어리고 둘이 만나면 아주 잘 어울려 논다.

그러니까 내가 OO이를 맡기로 한 시간은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1분이 1년만 같았다.

에너지 넘치는 조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 세 멤버는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OO이가 형제자매가 없잖아, 그래서 형이랑 누나 만나서 신나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아직 어리니까 너희가 좀 이해해 줘."

라고 말을 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오후 2시가 안 되어 남매의 거센 항의에 못 이겨 조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 맞춰 둘째 오빠네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나는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기분이었고, 내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조카에게 지쳐버렸다.

조카가 가고 온 집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아, 이래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는구나.

알지 못할 수가 없다, 이렇게나 어수선한데.

진작부터 고모집에 가고 싶다는 걸 데리고 가겠다고 건성으로 약속만 하고 한 번은 잠바까지 걸쳐 입고 온갖 장난감이 다 들어있는 제 캐리어까지 야무지게 챙긴 조카에게 다음에 오라고 해서 시무룩하게 한 과보를 오늘날 이렇게 톡톡히 받고야 말았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절대 피할 수 없으리니,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제 작은 아빠 집에 도착하자 조카가 내게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고모, 나 내일도 고모 집에 가고 싶은데."

"내일은 형이랑 누나가 공부해야 하는 게 있어서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다음날에 화상영어 관련 레벨 테스트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은 하지만 그건 내 생명의 은인과도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카야, 고모가 미안하다...)


엄마가 왜? 손주가 온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며 한숨을 쉬었는지 백번 이해가 갔다.

몇 시간 함께 한 나도 이렇게 힘든데 할머니는 오죽할까?

끼니 챙기는 것도 일일 테고.

자유분방한 일곱 살, 거침없는 일곱 살, 고모를 좋아하는(혼자만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고모네 집만 좋아하는지도 모를) 일곱 살 어린이.

이 녀석아, 귀여우니까 봐준다.

다음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건더기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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