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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4. 2024

세뱃돈을 준비하는 황금 시간대

설이 내일 모레

2024. 1.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시금치 작업 좀 해야쓰겄다."

"무릎도 안 좋은데 무슨 일을 한다고?"

"그거 해서 우리 애기들 설에 오믄 세뱃돈 줘야제."

"벌써 세뱃돈 준비하시우?"


설을 대비해 마루에 참깨도 널어 두셨다.

며느리들 오면 참기름을 짜 줘야겠다면서 말이다.


요즘 날씨도 꽤 쌀쌀한데 엄마는 무릎도 아프다면서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설을 벌써부터 준비할 각오를 하셨다. 아니, 정확히는 설에 사방에서 몰려드는 아들, 손자, 며느리, 사위를 위한 세뱃돈을 마련하기 위한 각오 말이다.

이렇게나 친정 엄마는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시다.

밭에 있는 그 시금치를 팔아 세뱃돈의 종잣돈을 마련하실 계획이 다 있으신 거다, 그래서 시금치가 있다.

이듬해 세뱃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늦가을에 엄마는 밭에 시금치(씨)를 그렇게 뿌리셨나 보다.


작년부터 갑자기 관절염이 심해지고 걷는 게 상당히 불편해진 엄마지만 그동안 농사지어 온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셨다. 정말 다리를 전다고 생각할 만큼 절뚝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셨다.

병원에서는 가능하면 일을 최대한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의사 앞에서는 알았다고,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병원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촌에서 일 안 하고 어떻게 산다냐? 그래도 하던 것이라 좀 해야제."

라고 말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자식들이 아무리 일 좀 줄이시라고, 그만하시라고, 다 접어도 되지 않느냐고, 아들 딸 다 결혼했고 두 분이 그냥저냥 생활할 정도는 되는데, 이젠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그렇게 일을 하시냐고 해도 언제나 저렇게 같은 대답뿐이다.

시골에 살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당장 마당 잔디 사이에 삐죽 솟은 풀 한 포기만 있어도 그 가죽손이 먼저 달려가는 것을, 밭에 씨앗을 뿌려 놓고 날이 가물면 스프링클러라도 돌려야 하는 것을.


"엄마, 요새 날도 춥고 무릎도 안 좋은데 무슨 시금치 작업을 한다고 그러셔?"

"그래도 뿌려 놨는디 그냥 놔두믄 쓰겄냐. 한 푼이라도 해야제."

듣고 보니 또 틀린 말은 아니다.

수확을 하려고 씨를 뿌려놨으니, 다 컸으니까 이제 원래 목적대로 거두어들여야 한다.

지난해 늦가을 부모님 두 분이서 씨앗을 뿌리고 풀을 뽑아가며 가꾼 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엄마도 이제 곧 일흔, 농사일을 줄여도 될 연세이다.

줄여야만 할 것 같은데 세뱃돈이 올 초부터 엄마를 시금치밭으로 향하게 할 것 같다.

사실 아빠는 절대 시금치 농사는 안 하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엄마가 '시금치 씨만 뿌려 주면 나머지는 혼자 다 알아서 하겠다'고(일단 아빠를 안심시킨 다음에 같이 밭으로 가자고 하신다.) 하시고 같이 씨를 뿌렸고 바야흐로 수확할 때가 된 것이다. 아니, 사실 때가 지나긴 했다.

연일 비가 계속 오고 눈 오는 날이 잦아서 작황이 그리 좋은 편도 못되어 엄마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어느 정도는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이(?) 새로 속잎이 솔솔 돋아나자 다시 마음이 동하신 거다.

"엄마, 건질 것도 얼마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닭이나 해 줍시다."

"그래도 가서 보믄 또 다르다. 저렇게 보여도 좋단 말이다."

라며 애써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작황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지만, 제초제를 안 하는 대신 아픈 다리로 일일이 풀 뽑아 가며 키운 작물이니 오죽하실까.

"엄마, 돈 벌려고 하다가 돈 더 들어간다니까!"

내가 20년 넘게 하는 말이다.

"다 벌어서 병원 갖다 주면 뭐 해? 그냥 덜 벌고 덜 아프면 되지."

단순한 나는 계산이 지나치다 싶게 정말 단순하다.

물론 덜 일한다고 반드시 덜 아프리란 보장도 없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버린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내 말이 엄마에게 통할 리도 없다.


시금치가 자라면 제일 먼저 캐 와서 맛보는 사람이 나면서, 말로만 엄마를 생각해 주는 척하는 거 아닌가도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부모님 두 분이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하지만 언제나 그 적정량이 문제다.)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끔은 너무 힘에 부쳐하면서도, 몸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면서도 무리를 하시는 통에 말썽이 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친정 밭에 있는 새파란 시금치를 생각한다.

어느새 데쳐서 들기름에 버무리고 통깨를 솔솔 뿌려 무쳐 먹고 있다.

그 시금치가 너무 맛나서 나는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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