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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3. 2024

넌 나에게 금수저를 줬어

오늘부터 금수저 1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받아. 한번 열어 봐."

"또 뭘 가져온 거야?"


겉보기에 그럴듯한 사회인인 그 양반은 퇴근할 때마다 사회생활도 하지 않는 아내를 위해 뭔가를 날라 오신다.

인사이동 후 선물로 들어온 떡 한 조각이라도, 사무실 직원들에게 한 병씩 공평하게 돌린 유산균 음료 하나라도, 하다 못해 급식 때 나온 한 모금 밖에 안 되는 주스 하나라도.

이렇게나 알뜰살뜰한 양반, 그날은 자그마치... 자그마치...


"이게 뭐야? 그럴듯한데?"

"나도 잘 몰라."

근래에 이런 이바지는 없었다, 맹세코.

사각 반듯한 것이, 무게도 제법 묵직한 것이, 뭔가 그럴싸한 게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아내의 직감이란 게 있지.

이건 결코 떡 조각이나 한 모금의 주스나 과자 쪼가리가 아니다.

포장부터 남달랐다.

겉포장을 벗기자 또 다른 상자가 나왔다. 게다가 그것은 벨벳인 듯 공단인 듯 비단인 듯(결국엔 그 소리가 그 소리인) 좀처럼 쉽사리 접하지 못한 그런 종류의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 생각났다.

결혼할 때 금은방에 가서 (그때만 해도) 사이좋게(라고 믿고만 싶다.) 결혼반지를 맞추던 날 그 반지 케이스가 꼭 그러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큰걸?

뭐야?

그럼 반지가 아니란 말이야?

반지 상자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야 맞는데?

그런데 저 상자는 내 얼굴보다 더  큰데?

그렇다면 혹시?

설마,,, 내가 걸핏하면 노래 불렀던 진주 목걸이?

(물론 내가 진짜 갖고 싶어 노래 부른 것은 아니요 그냥, 일종의 아무 말 대잔치였을 뿐이다. 일종의 떠보기 방법이라고나 할까?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괜히 해 보는 소리'라고 한다지 아마?)

그래, 저런 상자에는 영롱한 진주 목걸이가 제격이지, 아무렴.

진주 목걸이를 한 아내...

한때 진주 귀걸이를 했던 소녀가 결혼해서 자식도 둘 낳고 이젠 중년이 되어 과감히 진주목걸이로 갈아 탈 만한 세월이 흐르기도 했다.

아무렴.


"얘들아, 이것 봐! 아빠가 엄마를 위해서 이걸 가져왔어!"

두 아이를 급히 소집하고 나는 자랑스레 그 상자를 들어 올려 보였다.

"우와. 엄마 그게 뭐야? 멋진 게 들어 있을 것 같은데?"

아들이 더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가 엄마 선물 사 왔나 보다. 엄만 좋겠다. 근데 그게 뭘까?"

딸은 엄마 선물을 제 선물 보듯 하며 신이 났다.

"글쎄? 과연 뭘까? 정말 기대된다. 이게 뭐야?"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양반을 닦달했으나 그 양반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도 몰라."

이 양반이 지금 이렇게 시치미 떼기야?

그래,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겠어.

날 위해(서인지 그냥 어디서 들어와서 가져온 것뿐인지는 확인 불가다.) 이런 선물까지 가져오셨는데.

그나저나, 집에 청심환도 없는데 그 영롱한 진주알에 눈이 부셔 숨이 막히면 어쩐다지?

이럴 줄 알았으면 청심환이라도 집에 상비해 놓는 거였는데 이를 어째?

하여튼 이 양반은 갑자기 이렇게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드디어 포장지도 뜯고 그 딱딱한 상자를 열었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황금빛 찬란한 두 쌍의 수저를.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니.

큰오빠가 언젠가 부모님 댁에 들고 온 그것, 그 양반이 몇 년 전 상 받았다며 부상으로 가져와 시부모님께 기꺼이 전달해 드린 그것이었다.

아,

나는 진작에 짐작했어야 했다.

그 양반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선물의 정체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한 것에 대해, 내게 그것을 건네어주면서 이상 야릇한 미소를 내내 짓고 있었던 것에 대해 말이다.

그나저나 이건 귀에 걸 수도 없고 목에 걸칠 수도 없는데 어쩐다지?

나도 이제 금수저라고,

상냥한 남편 덕분에 바야흐로 금수저가 되었다고,

비록 24k 도금일지언정

이것도 금수저는 금수저라고,

진정한 금수저는 바로 이런 거라고,

순금은 오히려 물컹물컹해서 잇자국이 남아 못쓴다고,

저 도금 수저가 딱이라고,

비록 금붙이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외출할 수는 없을지언정

어쨌거나 모로 가도 서울을 가긴 간 거라고.


"얘들아, 이제 엄마도 금수저다!"

비로소 금수저로 다시 태어난 나는 아이들 앞에서 호기롭게 선언했다.

"진짜 금수저네. 하하하."

아이들보다 그 양반이 더 뿌듯한 얼굴이었다.

나를 순식간에 금수저로 둔갑시켜 준 그 양반,

(적어도 그 당시에는) 진정한 능력자!

금수저가 된 이 기분이라니!


"이걸로 밥 먹으면 무병장수한대, 여보. 여기 쓰여 있네."

내친김에 그 양반이 달떠서 내게 슬쩍 말을 던졌다.

순진한 양반 같으니라고,

"그럼 이걸로 밥 먹으면  다 무병장수하고 아픈 사람도 없겠네,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나이가 몇인데? 그래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래, 이 양반아!"

라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게 있어?"

뇌물로 금수저씩이나 받았는데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최소한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는 안다.

"봐봐. 이제 나도 이걸로 밥 먹고 무병장수해야지."

순식간에 제 아내를 금수저로 만들어준 능력자가 내게 말했다.

생명연장의 단꿈에 젖은 그 양반에게 내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했다.

"무병은 하되, 장수는 하지 말자, 인간적으로. 그냥 적당히 사는 게 최고야. 자식한테도 본인이나 나한테도. 무조건 장수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 내 몸을 내가 건사할 수 있을 만큼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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