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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22. 2024

우리 집 간헐적 태스크 포스 팀

구성할 때와 해체할 때

2024. 1.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 멤버들아, 빨래를 갤 시간이야."


건조기에서 갓 꺼내온 빨래 뭉치를 담은 바구니를 세 멤버의 앞에 들이밀었다.

토요일이었고, 비가 이틀째 내리고 있었고, 딱히 다른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그런 날에는 오손도손 모여 앉아 빨래 개기가 딱이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런데, 비 오는 토요일엔 빨래 개기를.


"얘들아, 빨래 개자."

남편이 신나게 만화책을 읽던 아이들을 소집했으나 남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만! 일단 멈추고 빨래부터 개자."

혼자만 빨래를 개고 싶지 않았던 멤버는 아이들을 동원하려고 시도했다.

아무렴,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주말 아침에 빨래 개는 일이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말이다.

한겨울에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냇가에 나가 빨래 방망이를 두들겨 빨래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다 된 빨래를 단지 개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네 멤버의 옷이 골고루 섞여 있었으므로 남매에게도 전혀 부당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고 나는 항상 주장해 왔다. 심지어 빨래의 8할은 남매의 소유물이라고 말이다.)

하다 못해 서 너 살 때부터 양말 짝 맞추기 놀이로 시작해 빨래 개는 일을 같이 했던 남매는 순순히 동참했다.

빨래 개는 것도 오히려 나보다 더 단정하게 잘 갠다.

넷이 하니까 (거짓말 조금 보태서) 5분도 안되어 일이 다 끝났다.

그 일에 네 멤버가 매달렸다는 사실이 무색하리만치 순식간이었다.


"얘들아, 오늘 진짜 빨리 끝냈다. 혼자 하려면 시간 좀 걸렸을 텐데 같이 하니까 이렇게 빨리 하네. 그치?"

"응, 엄마. 진짜 그러네."

"외할머니가 항상 뭐라고 하셨지? 눈같이 게으른 게 없고?"

내가 슬쩍 말문을 떼자 딸이 잽싸게 아는 체를 했다.

"손같이 부지런한 게 없다!"

"맞았어. 우리 아들 딸이랑 아빠랑 같이 하니까 순식간에 끝나버렸어. 집안일은 이렇게 같이 하는 거야. 알겠지?"

가능하면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가 아니면 집안일을 온 가족이 있을 때는 거의 같이 하는 편이다. 콩 까는 일이나 마늘 까기 같은 단순 노동은 더더욱 말이다. 일부러 네 멤버가 온전히 집에 모일 때를 노리기도 한다는 점을 양심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가끔은,

"아빠는 힘들게 일하고 와서 그런데 좀 쉬면 안 될까?"

라고 선처(?)를 구하는 멤버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동참하는 편이다.

사회생활로 고단한 직장인은 본인의 의사를 적극 반영할 필요도 있거니와 그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므로 나도 굳이 악착같이 동참하게 하지도 않는다.

나도 눈치란 게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이제 갖다 두면 되겠다. 각자 자기 것은 가져가자."

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과 딸이 느닷없이 마찰을 빚었다.

"이건 다 내가 갖다 둘래."

아들이 내복 바지들을 들고 과감히 상의까지 모조리 챙겨 가려고 하자 딸이 제지하고 나섰다.

"그건 내가 갖다 놓을 거야!"

나 같으면 동생이 하겠다고 하면 모른 척하고 슬그머니 눈 감을 텐데, 딸은 기어코 제 몫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여러 분야에 은근히 욕심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집안일까지 욕심을 내다니.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의욕은 높이 살 만하다며 나 혼자만 속으로 흐뭇해한다.

아이들은 그들의 내복을 나눠 가져가고 남편은 남편 옷을, 나는 수건과 내 옷을 챙겨 각자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급조된 빨래 개기 태스크 포스 팀은 임무를 마침과 해체되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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