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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23. 2024

관종 되기 참 쉽죠

제자리를 찾지 못한 어휘 선택

2024. 1.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저기 관종 좀 봐."


아들이 축구 경기를 보다 말고 느닷없는 말을 했다.

관종?

처음엔 나도 모르는 단어였지만(나는 신조어에 약한 편이다) 이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 적어도.

그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인데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때 억지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말 하나는 정말 잘 지어냈다 싶으면서도 어감이 그리 좋지 않아 쓸 일도 없던 단어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 온지라 나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아들이 예쁜 말만 듣고 예쁜 말만 하고 살기를 바라는 지극히 엄마 중심적인 바람은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몹쓸 단어는 아니지만 그런 단어는 우리 아들 입에서 안 나왔으면 싶었던 것이다.

동시에 세 멤버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아들이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지?"

"엄만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당연히 알지."

"그래? 혹시 누가 주변에서 그런 말을 언제 했어?"

"엄마, 저기 봐봐, 엄청 많잖아. 저 관종들 말이야."

아무리 TV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관종'으로 의심되는 이는 없어 보였다.

무슨 근거로 내가 섣불리 그들을 관종으로 단정 짓는단 말인가.

그나저나 우리 아들이 웬 느닷없는 관종 얘기지?


"아빠, 저 관종들이 다 반팔을 입었네."

이건 무슨 논리지?

반팔을 입으면 다 관종이란 말인가?

아들 말마따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많은 관중들이 거의 다 반팔을 입고 있었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관종이 다 반팔을 입고 있어...

그래 아들이 말한 관종은 '관중'을 의미했던 거였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도 가끔 귀여운 말실수를 일삼는 아드님이셨지만 그날은 내가 좀 눈치가 없었다.

아들이 말한 '관종'은 실제 관종을 의미한 게 아니라 사실 '관중'을 말한다는 게 그만 실수로 그렇게 말이 튀어나온 거라 생각하니 다소 안심이 되면서 그런 실수조차 깜찍해 보이기만 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 아들이 그런 말을 느닷없이 엄마 앞에서 할 리가 없지.


"우리 아들, 아들이 아까 말한 게 정말 관종이 맞아?"

"저기 저 사람들이 관종이지 뭐야?"

"그래? 확실해?"

"엄만 날 어떻게 보고. 저렇게 경기 보러 온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하잖아. 엄마는 그것도 몰라?"

"아, 그래? 그런 거야?"

"그래. 아휴, 엄마. 공부 좀 해야겠다."

"아니, 엄마 생각에는 우리 아들이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뭘?"

"혹시 관종이 아니라 관중 아니야?"

"아, 맞다! 관중이야 관중.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게 그거였어!"

"그치?"

"응. 아까 그건 내 실수였어."

이렇게나 인정이 빠른 어린이라니.


"단어가 비슷해서 우리 아들이 헷갈렸구나?"

"응, 그랬어."

"진짜 비슷하긴 하다. 근데 관중은 '볼 관, 무리 중'을 써서 여럿이 모여서 경기나 공연 같은 걸 보는 사람들을 뜻하는 거야. 한자를 떠올리면 안 어려워. 이젠 안 헷갈리겠지?"

"아, 그렇구나. 알았어."

성격이 급해서 그런가?

가끔은 너무 의욕이 앞서 말실수를 할 때가 있는 아들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서 듣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다.

그래도 그런 모습조차 귀엽기만 하니 엄만 어쩌면 좋다니.

게다가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하고 정정하는 그 배포를 보라지.

뜬금없는 말을 곧잘 하는 어린이,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누가 들을까 무서운 망측한 말도 서슴지 않는 어린이, 이래서 방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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