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나는 또 '나 가진 재물 없으나'에 버금가는 '나 낼 세금 없으나' 타령을 시작해야만 했다.
"자동차세 연납 신청한 거 내야겠다. 그냥 내면 되겠지. 어차피 낼 거 빨리 내 버려야지. 안내면 계속 신경 쓰여."
지난주부터 계속 자동차세를 가지고 몸살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양반 혼자만.
나는 뭔가 미심쩍은 게 있어서 고지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했지만 엉뚱한 데서만 얼리 납세자인 그 양반은 하여튼 청개구리처럼 내 말만 안 들었다. 그러면서 또 시작하는 것이었다. 누가 들으면 사회에 불만이 굉장히 많은 사람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그런 발언들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당신은 차가 그냥 굴러가는 줄 알지만 기름 넣어야지 보험료 내야지 수리해야지 관리해야지 아무튼 다 돈이라니까."
알았다니까, 그만 듣고 싶다니까, 왜 또 갑자기 그 소리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안 하고 싶은데.
"하여튼 기름값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차 한 대 굴리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
알아도 모른다니까? 왜 얌전히 있는 사람한테 괜히 불통을 튀기는 거지?
"우리나라는 내라는 세금도 참 많아. 나야 뭐 많이 내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금만 해도 일 년에 꽤 내나 보더라."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혼자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한참 하다가 갑자기 그 양반의 병이 도진 것이다.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아니 솔직히 혼자 말하든지 말든지 내 관심 밖이었다.
"이번에는 연말정산 해도 못 받을지도 모르겠네."
저 말을 벌써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
"자동차세만 해도 얼마야? 1월에는 돈 나갈 것도 많네."
이렇게 금전적인 발언을 할 때는 나는 빠지는 게 수다.
"진짜 무슨 세금 종류가 이렇게 많은가 몰라, 우리나라는."
내가 세금 만들었나? 왜 내 앞에서 자꾸 저 얘기람?
"내가 지금 내는 소득세부터 시작해서..."
그 양반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했다.
이젠 내가 나설 차례다.
만담을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멈추는 그 양반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거야 가진 게 많으셔서 그렇지."
나는 이렇게 사실만 있는 그대로만 말한다.
"내가 뭐가 가진 게 많아?"
평생 대꾸 한마디도 안 할 것처럼 있다가 방심한 사이 내가 한마디 하자 그 양반은 발끈했다.
"생각해 봐. 집 있으니까 재산세 내지, 차 있으니까 자동차세 내지, 직장 있으니까 소득세 내지, 게다가 세대주니까 주민세까지 내지. 나 봐봐, 아무것도 없잖아. 난 세금 1원도 안 내잖아. 가진 게 있어야 세금을 내지."
틀린 말은 전혀 아니다.
전부 사실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우리 집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엄청났다.
아니, 빈부의 격차까지 갈 것도 없다.
나는 그냥 '무(無)' 그 자체가 아닌가.
내가 2022년에 의원면직을 하고 난 후 우리 집은 '빈무의 격차'가 극에 달했다.(고 나만 씁쓸해한다.)
하다못해 전업주부 중(증인 1호:둘째 시누이)에서도 아파트 명의 정도는 아내 앞으로 해 두거나 최소한 부부 공동명의(증인 2호: 남동생 부부)로 해둔 집도 많던데...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것을 굳이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해 줄 그 양반도 아니거니와.
그냥, 말이 그렇다 이 말이다.
바야흐로 '빈무의 격차'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외벌이라고, 비록 서 너 가지 본인 명의의 어떤 것이 있지마는 자신은 그리 많이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와 명목상 그 어떤 소유물조차 없는 자,
한 집에서 빈무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하다못해 새대주도 못된 나는, 그저 세대원일 뿐인 나는 1만 원 정도의 주민세를 납부하는 그 세대주에게 눈곱만큼의 부러움조차 느끼지 않는다. 세대주는 그저 그 세대의 대표일 뿐이고 대표로서 납부하는 세금이 주민세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남몰래 위로한다,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