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an 28. 2024

우체국 그만두길 잘했지?

올챙이 시절 잊지 않았겠지?

2024. 1.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우체국 나오길 잘했어. 그치?"

일부러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남편이 먼저 우체국 얘기를 하길래 어떤 얘기 끝에 그 말까지 나왔다.

국가직을 그만두고 교육행정직에 합격한 직후에는 남편이 저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다, 마치 주입시키듯 말이다.

"응. 그래."

남편은 싱겁게 반응했다.

이게 뭐야?

보험은 도저히 못 팔겠다며 결혼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는 사람에게 정 그렇다면 그러라고 순순히 동의한 내 보람도 없이?


남편과 보험 얘기를 하다가 기어이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결정적으로, 남편이 신혼 시절에  우체국을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가 보험 때문이었기도 했다.

내 친구 중에도 국가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 부탁으로 나도 보험을 하나 들어준 적이 있었다. 물론 적금도 하나 들었었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배우자인 남편이 우체국에 근무한 시절에는 보험도, 흔하디 흔한 예금도 들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둘 다 곧 의원면직을 할 거란 걸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국가직은 커트라인도 높은데 다니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많더라, 특히 우체국은."

결혼 초에 남편이 그런 말을 흘릴 때부터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 동기 중에서도 우체국 그만두고 다시 다른 직렬 시험 봐서 붙은 사람도 좀 있어."

라면서 무지갯빛 찬란한 (당장 본인의 일이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저런 말들을 곧잘 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택배였다.

남편은 창구에서 일했지만 시시때때로 택배 관련 일에도 동원돼야 했고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서도 다른 직원의 택배 업무에 나서고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6시에 면사무소에서 퇴근한 내가 군내 버스를 타고 그가 근무하는 우체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문자를 보내면 그는 곧잘 이런 답장을 보내곤 했다.

"아직 멀었어. 8시 전에는 퇴근 못 할 거 같아."

요망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정신 못 차리고 한 번씩 나는 버스 정류장을 배회하며 그 우체국 근처를 어슬렁 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정말 그는 택배 일을 돕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들에서 나도 그의 의원면직을 쉽게 동의했는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보험 업무 때문에 절망했고 말이다.

내 친구도 다른 건 그런대로 할 만하지만 보험 업무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으니까.

게다가 친구의 결정적인 한마디,

"그래도 여자는 그런대로 할 만한데 남직원들은 택배까지 동원되니까 힘들긴 힘들 거야."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도 남편이 그저 순간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 의심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무원 직렬에 대해 잘 모르고 무작정 일단 붙고 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겨우 신혼여행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충격적이었지만 길게 보자며, 아니다 싶을 때 빨리 결단 내리는 게 좋다고 내게 말했을 때는 오히려 내가 더 부추겼던 것도 같다.

아니란 걸 확신한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모태 교육행정직렬 직원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다른 직렬에 잠시 발 담갔던 그 사람은 가끔 보면 올챙이 적을 생각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말이다.

개구리로 환골탈태하기 이전에 뛰지도 못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하는 시가 있었던가?

남편과 나,

그러나 우리는 갔던 길,

그 길 때문에 우리의 인생 모든 게 달라진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특히 요즘에.

"아무튼, 그때 그만 두길 정말 잘했어, 지금 생각해 봐도."

그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말을 심상하게 하는 나는 그 순간과 시절들을 이미 다 흘려보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