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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26. 2024

이 비는 그 비가 아니야

옛날 사람의오지랖

2024. 1. 25.

<사진 임자 = 글임자 >


"하여튼 너희 엄마는 옛날 감성을 포기 못 한다니까."


내가 뭘 포기 못한다고?

아니, 포기 못하는 게 아니라 난 그냥 그게 좋은 것뿐이야.

포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단지 내 취향이니까, 이 양반아!


수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이브닝 스페셜을 듣고 있었고, 마침 이브닝 헤드라인 뉴스 시간이었다.

보통은 아침에 들었던 모닝 스페셜 헤드라인 뉴스가 반복되기도 하는데 오늘은 내가 놓친 뉴스 기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리메이크 한 노래에 대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매일 하루 종일 EBS 반디를 켜 놓고 있었으므로 우리 집 멤버들은 반강제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영어 표현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알고,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냐며 나만 의욕을 보이며 꿋꿋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마침 요즘 새로 리메이크한 노래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의 뉴스 기사가 나왔다.

내가 왕년에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던 '비의 랩소디', 이게 얼마만인가.

한때 노랫말에 심취해 친구들과 노래방 들락거리며 수도 없이 불렀던 노래다.

최근에 어떤 가수가 이 노래를 다시 리메이크했는데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가수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그 와중에 뉴스 기사를 들으면서 나는 비의 랩소디란 노래 제목에서 '비'를 'rain'으로 표기한 것을 귀신같이 포착하고야 말았다.

내가 알기론 그 비가 이 비가 아닌데... 슬플, 비라고 알고 있는데.

이건 그게 아닌 거 같다고 반디 게시판에 당장 제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긴, 한자를 표기하지 않으면 저렇게 오해하기 딱  좋긴 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내 의견을 게시판에 소심하게 올려 보았음은 물론이다.

다행히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다른 청취자가 내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그 노래 말고도 '널 보낸 후에'도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최재훈 가수가 그 방송을 듣고 있다면 얼마나 서운하실까, 혼자만 생각하며 원곡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랜데! 옛날에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서 많이 불렀는데 말이야."

나만 반가운 마음에 별 관심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노밍아웃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다 말고 그 양반이 갑자기 리메이크된 그 노래를 재생했다.

"이 노래가 더 낫네."

뭘 알고 하시는 말씀이실까?

그래,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엄마는 원곡 가수가 부른 걸로 들어 봐야지."

그 양반이 재생한 노래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원곡을 재생했다.

불현듯 20여 년 전 잘 나가던(잘 나갔을 것이다, 적어도 학교는) 과거의 내 젊은 날이 떠오르며 혼자 심취하기 시작했다.

"난 역시 원곡이 더 좋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원곡을 좋아하든 리메이크된 곡을 좋아하든 그냥 각자 자기 마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느닷없이 그 양반이 끼어들었다, 또.

"하여튼, 너희 엄마는 진짜 옛날 사람이라니까. 옛날 것만 좋아해. 요즘 가수가 부른 게 훨씬 좋구만."

나는 그냥 옛날 가수가 부른 노래가 좋아서 좋다고 말한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옛날 사람이라느니, 옛날 감성을 포기할 줄 모른다느니, 그러는 그 양반은 나랑 몇 살 차이나 난다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장기하는 그 노래를 만들었다지, 참?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만,

그건 나 생각이고!


안 맞다 안 맞다 해도 이렇게 안 맞을까?

예전 가수를 좋아하는 게 뭐가 어때서?

가요 무대 보는 게 뭐 어때서?

6시 내 고향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걸핏하면 나보고 옛날 사람이래?


떠나가요,

아주 먼 곳으로,

그 양반 소식 내게 올 수 없을 그만큼...

어쩜, 이렇게나 가사가 찰떡이니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명곡은 명곡이야,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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