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니 언제나 그렇듯 딱히 갈 곳 없고 오라는 데 없는 그 양반은 매일같이 칼퇴근하신다.
어제가 금요일이란 사실에 엊그제부터 기분 좋아진 그 양반은 또 뭔가 마시고 싶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지독한 감기로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며(병원에서도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고 했고 몸이 힘들어 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며칠 동안 시장을 보지 않아 반찬이 부실했다. 반찬이 부실한 것은 둘째치고 그 양반에게는 마실 무언가가 부실했으므로 또 급히 마트로 향하게 된 것이다.
"나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거 있어? 내가 사 올게."
퇴근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출근 복장 그대로 다시 나가려고 했다.
사실 어제 오후에 오래간만에 시장을 봐 오긴 했다.
물론 별 건 없었다.
대신 시장을 봐주겠다는 선심에서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다지 필요한 게 없었고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다.
아니,
사실,
안 가야 그만이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그 양반은 믿을 사람이 못된다.
아마 막걸리 때문에 나가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별로 필요한 건 없는데."
"그러면 이따가 연락 줘."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그 양반은 집을 나섰다.
불길했다.
아마 싹 쓸어오고도 남을 것이다, 내키는 대로.
이럴 때는 일일이 지시를 해야만 한다.
제발 내가 말한 것만, 그대로만 사 오라고.
"주꾸미가 있네. 살까?"
"해 먹을 줄 알아?"
"아니?"
"직접 해 먹을 거 아니면 잘 판단해."
"알았어. 안 사야겠다."
"새우도 있네. 살까?"
"뭐 하게?"
"아니다, 그냥 두자."
"생선 많이 나왔다. 병어 세일하네."
"세일은 항상 해."
"조기도 있는데?"
"조기는 집에도 있어."
"방어가 왜 이렇게 싸지?"
"싸든가 말든가 무슨 상관이야?"
"알았어, 안 살게."
"치킨 세일하네. 살까?"
"애들 감기도 다 안 나았는데 기름기 많은 음식 별로 안 좋아. 나중에 나으면 줘, 주더라도. 내일 내가 닭 사서 닭볶음탕 할 거야."
"딸기가 왜 이렇게 비싸지?"
"쳐다보지도 마."
"콩나물 살까?"
"내가 진작 사놨어."
"뭐 필요한 거 있어?"
"합격이가 국수 먹고 싶다니까 거기 넣게 호박이나 사든지."
"애호박이지?"
"그럼 애호박이지 늙은 호박일까?"
"호박 어딨지?"
"채소 코너 쪽에 가 봐."
"하나에 2,900원이네."
"정신 차려! 두 개를 사야 하나에 2,900원이야. 하나에 그 가격 아니야."
"진짜 그러네. 하나엔 3,500원이네."
"정신 좀 차리고 잘 보고 사. 어이구, 시원찮아서 정말..."
"오징어가 있긴 있는데 생물인데?"
"그거 말고 내가 손질된 걸로 사라고 했잖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라고 했지? 엉뚱한 거 사 오지 말고. 원래 5 마리에 15,000원인데 지금 세일해서 만원에 팔고 있어. 그걸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