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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05. 2024

나 몰래 재산 조회 한 거야?

비밀 많은 남자 추궁하기

2023. 12. 1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지금 공직자 재산 등록 하는 기간 아니야?"

"했어?

"언제?"

"저번에."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나 몰래 동의서 작성해서 마음대로 한 거야?"


작년에 1월 말쯤엔가 재산 조회를 한다고 내게 동의서에 동의해 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올해도 그 시기가 된 것 같아 말을 거네 봤는데 벌써 장이 다 파했단다.

난 동의서 구경도 못했는데 언제 했다는 거지?

그렇게나 중요한(?) 일을 혼자 마음대로 다 해치웠다는 거야?


"재산 등록 이거 진짜 성가시네. 변동사항 있으면 일일이 다 사유 적어야 되고."

하루는 그 양반이 퇴근을 하더니 다짜고짜 불만을 표출했다.

"변동 사항 생길 거 뭐 있어? 우리 살림이야 맨날 뻔하지. 그게 뭐가 성가셔?"

나 몰래 뭔가 변동시킨 게 있으신가?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진짜 귀찮아."

"항상 똑같잖아. 그리고 우리 살림이 줄었으면 줄었지 늘 일도 없고 세상 편하지."

"아니던데. 당신 재산 변동사항 있던데?"

이게 무슨 느닷없는 소리란 말인가.

아파트도 그 양반 것이오, 차 두 대도 그 양반 것이오, 기원전 5,000년 경에 진작 요단강을 건넜다고 소문난 주식도 그 양반 것, 대출도 모두 그 양반 것인데 내가 무슨 재산이 있다고 변동 사항이 있다는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내가 그 양반 몰래 숨겨둔 재산이 있었던가?

없던 숨겨둔 재산이라도 생각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있을 수가 없다.

가진 게 없는데 감추고 숨길 게 뭐가 있다고?


"당신 적금 해지했다가 다시 했던데?"

지금 누가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했나?

"행정 공제회 그 돈 말이야?"

내 소유의 재산이라면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그 적금이 있긴 있다.

거금도 아니고 그저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행정 공제회에 모아 두었던 돈을 퇴직할 때 전부 1년짜리 적금 하나를 만들어 일 년마다 만기가 되면 다시 들고 했던 것이다.

"어차피 1년짜리니까 당연히 1년 되면 다시 적금 들었던 거지. 그런 것도 다 변동 사유가 되는 거야?"

"그래. 그런 것도 다 포함돼."

"어차피 금액은 똑같은데 그걸 변동 있다고 할 수 있나?"

"아무튼 별 걸 다 사유 쓰라고 한단 말이야."

"입력 잘못하면 그것도 숨기려고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고 그래."

"그렇겠지. 뭔가 잡아내야 하니까."

"아무튼 귀찮아."

"혹시 나 몰래 감춰둔 돈 같은 거 없어? 있으면 얼른 자수해."

"없어. 나도 있으면 좋겠다."

"확실해?"

"나도 그 내용 좀 보자. 한 번 출력해 줘 봐."

"별 거 없어. 뭐 하러 출력까지 해. 당신 것만 내가 출력해서 보여 줄까?"

"내 건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뭐 하러? 난 달랑 하나밖에 없는데  말이야. 내 것 말고 남의 것이 궁금하니까 그렇지. 나 몰래 뭘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보고 판단할게. 왜 자꾸 감추려고 하는 거 같지?"

"감추긴 뭘 감춘다고 그래?  그리고 우리 부모님 것도 다 섞여 나오는데."

"어머님 아버님 것은 난 관심도 없고, 나랑 상관도 없으니까 그건 말할 필요도 없고  본인 것 말이야. 그게 궁금하다고."

"복잡해. 다 섞여서."

"그거 추리는 게 귀찮아? 근데 왜 나한테 정보 제공 동의서는 안 받아갔어?"

"작년에 받았잖아?"

"뭐야? 작년에 받은 걸로 올해도 우려먹는 거야?"

"응."

"좀 이상한데? 할 때마다 나한테 동의받아야 하는 거 아냐?"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년에 동의 안 해 줄 걸 그랬네."

"사실 재산 공개 거부할 수도 있어."

"그래? 근데 왜 그걸 이제 말해? 나도 거부할 걸 그랬다."

"아니. 당신은 거부할 수 있는 자격이 안돼."

"왜 안돼? 내가 싫으면 안 하는 거지."

"원래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몇 가지 있는데 당신은 거부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도 해당 없어."

단지 배우자란 이유만으로 내 모든 걸 다 샅샅이(뒤져봐야 나올 것도 없는 것을) 뒤질 수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

하여튼 만만한 게 공무원이고 공무원 가족이지.

"옛날에는 정말 비리 공무원들 많았을 거야. 요즘엔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 그런 경우도 많이 없지."

"이렇게 다 뒤져 버리는데 설마 아직도 불량한 공무원들이 있을까?"

하긴 이런 것을 대비해서 더 철저하게(?) 비리를 저지르고 감추고 빼돌리고 속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지도 모른다.

종종 뉴스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던가.


그나저나

아무래도 그 양반의 그 말이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 번 제출한 동의서로 몇 년을 재사용한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내가 굳이 확인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테니까.

이건 그 양반을 믿고 안 믿고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공무원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공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든 막다른 길, 어느 면에서 유독 힘없는 하위직 공무원에게 더 엄격하고 빈틈없는 잣대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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