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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10. 2024

어른이가 시장에 가면

부부, 동행의 의미

2024. 2. 9.

<사진 임자 = 글임자 >


"직원들 전통시장으로 다들 간다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있어도 없어."


명절이면 으레 그러하듯 전통시장을 강제로(?) 이용하게 한다.

연휴 전날 필수 요원으로 사무실에 남겠다더니 갑자기 시장을 가겠다고 했다.

살 것도 없고, 그보다는 결정적으로 그 양반을 못 믿어서 심부름을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단 내렸다.


"그럼 나 태우고 가."

"당신도 가게?"

"됐어. 직원들도 많이 가는데. 나 혼자 갈게."

"뭐야? 지금 내가 창피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직원들 다 그리 올 거라고. 만나면 인사시키고 어쩌고 복잡해. 그냥 나 혼자 갔다 올게."

"내가 언제 같이 가자고 했어? 나 태우고만 가라고 했지? 나도 같이 안 다니고 싶어. 이거 왜 이래?"


그 양반은 혼자 느닷없는 김칫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 양반이 호랑이나 불법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무서워하는 건 만에 하나라도 아내인 나와 부부 동반으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직원이라도 만날까 봐, 아는 사람이라도 부딪치는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도 분명히 밝히지만, 그 양반에게도 수 차례 말했지만 그 양반하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이들 생각에 마지못해 여행을 같이 다니긴 하지만 나라고 좋아서 다니는 건 아니다.

가능하다면 나는 나 혼자만 다니고 싶다.

그 양반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우리가 둘이 같이 다니는 걸 누가 볼까 무섭다.

안 엮이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태우고 가란 말은 태우고만 가서 각자 돌아다니자는 말이었다.

어쩜 꿈도 야무지시지, 내가 그 양반과 같이 시장을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 걸까?

어차피 쇼핑 패턴이 다른 사람들이다.

보이는 대로 무조건 사 버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가능하면 필요한 것만 확인하고 사려는 사람이 우리 부부다.

물론 전자가 그 양반이고 말이다.

참고로 그 양반은 귀가 얇다 못해 없다.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사는 것도 무지하게 좋아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당장 장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채울 양반이다.


"누가 언제 같이 시장 보자고 했어? 난 내 일  볼 테니까 본인은 본인 일 보면 되지. 난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 없어."

"그런 거였어?"

"아무튼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말고. 도착하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해."

물가에 내놓은 어른이에게 나는 신신당부했다.

"여기 사람 진짜 많다."

"직원들이 진짜로 다 왔나 봐. 벌써 몇 명 만났어."

"주차할 자리도 없어서 10분 동안 돌았다니까."

"시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해."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지?"

하여튼 그 양반은 말이 많았다.

"용건만 간단히 말해!!!"

"뭐 사갈까?"

"귤이 자꾸 먹고 싶네."

"귤 비싼데."

"난 귤이 먹고 싶다고!"

"임신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귤이야?"

"임신 안 했어도 했어! 귤이 먹고 싶다고!!!"

"알았어. 근데 귤 비싼데."

"그래서 안 산다고?! 됐어!"

"아니야. 살게."


그 양반은 내게 전화를 10 통도 더했다.

무 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전화만 하고 있으니...

저래가지고 직장생활은 어떻게 하나 몰라.

그래도 명절이라고 명절 휴가비도 다 받아오고, 용하다 용해.

물가에 내놓은 어른이치고는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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