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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16. 2024

공무원 가성비?

그런 게 있다면

2024. 2. 10.

< 사진 임자 = 글임자 >


"공무원은 그래도 15년 정도 하면 이제 가성비가 괜찮은 것 같은데, 하필이면 딱 가성비 좋아지기 시작할 때 당신은 그만둬버렸단 말이야."

"그냥 당근만 썰어 줄래?"

그 양반은 김밥에 넣을 재료로 당근을 조신하게 채 썰고 있었다.

내가 당근을 썰어 달라고 했지, 또 뒷북치는 소리 하시라고 했나, 언제?


"나는 차라리 채칼을 사서 쓰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은데. 좋은 거 하나 사서 잘 쓰면 되잖아. 가성비를 따지면 말이야."

"일 년에 채 썰기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리고 집에 하나 있어."

"그럼 그걸 쓰지 왜 일일이 손으로 썰어, 힘들게?"

아, 그게 말이지, 댁이 맨날 누워만 있길래 좀 일으켜 세우려고 그런 거야.

사람이 일하고 오면 피곤한 건 이해하지만 너무 누워만 있어도 건강상 좋지 않을 거다.

최대한 실만큼 가늘게 썰게 하고 싶었으나 용케도 눈치를 챘는지 그건 단칼에 거절하셨다.

"근데 김밥에 이렇게 당근이 많이 들어가나?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게 뭐가 많다고 그래? 많아도 안 많아. 그냥 하라는 대로 썰기나 하셔."

김밥에 들어갈 당근은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강제로라도 앉아있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5개는 썰어야 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다음에 이어질  대화의 내용은  난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이제 9급 때에 비하면 월급도 많이 올랐고 둘이 이 정도 벌면 괜찮을 텐데 딱 살만해질 때 당신이 그만둬버렸네. 우리 둘이 월급 합치면 그래도 적은 건 아니잖아."

"또 시작이야? 언제까지 그 소리 할 거야? 평생 할 거지?"

"아니, 난 좀 아까워서 그러지. 공무원은 처음엔 너무 월급 적고 15년 정도 되니까 이젠 가성비를 따졌을 때 괜찮은 것 같아서."

"그래, 그렇기도 하겠다."

2년 전 공무원을 그만두고 난 후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말이다.

물론 일을 그만둔 직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미련을 못 버리고 내게 말했지만 차차 잠잠해진다 싶었다.(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나중에 20년만 채우고 그만할까?"

결혼 초반에 남편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괜찮겠다. 근데 그다음에 뭐 하고 살게?"

"아니야, 그때 되면 쉽게 그만 못 둘걸? 20년 하면 그래도 월급이 좀 될 거 아니야."

"그렇긴 하겠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벌써부터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철없이 둘이 저런 대화를 하던 때가 까마득했다.


농담 삼아 20년만 하고 그만두자고 했는데, 사정상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됐고, 그 양반은 한 번씩 또 미련이 남는 것이다.

이미 넌덜머리가 난 지 오래였으므로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양반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왜 자꾸 그러는가 싶다. 물론 그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도 있는 말이려니 하면서도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그런 마음인 거다.

알잖아, 지나간 것은 지나 간 대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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