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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15. 2024

직장인은 눕는다

풀이 아니기 때문에

2024. 2.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거동을 못하겠어? 왜 누워서만 살아?"


생후 6개월도 안된 신생아도 아니고 생후 수 백 개월이 지난 사람이 누워서만 생활하다니, 아무리 피곤하기로소니 가끔씩 한 번 일어나 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나 혼자만 생각했다.)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다.'(김수영의 시-풀)

그 직장인은 풀이 아니라서 그런지 바람보다 빨리 눕긴 해도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날 생각은 없으신 것 같다.


퇴근을 하면 직장인은 누우신다.

물론 피곤해서 눕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평소에 운동도 거의 안 하는 편(이라고 내 전재산을 걸고 확신한다)이니 앉아 있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특히 먹고 바로 눕는 습관은 안 좋다고 하던데 언제부터인가 저렇게 습관 들었다.

"캄캄한 방에서 뭐 하는 거야? 불이라도 좀 켜지."

직장인은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방에서 딸이 체험활동으로 만든 무드등 하나만 켜고 딸에게 '누워서' 설교 중이었다.

"전기가 안 들어와? 스위치를 못 눌러? 뭐가 문제야? 왜 불도 안 켜고 그렇게 있어? 눈 나빠지게?"

방에 불을 안 켠다고 해서 눈이 확실히 나빠지는지 어쩐지는 나도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그 직장인의 특기다.

불도 안 켠 캄캄한 방에서, 음침한 공간에서 손바닥만 한 휴대폰을 들여다 보기를 즐기는 것.

혼자 그러고 있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내가 한마디 하면 잔소리한다고 타박이나 하니, 평소엔 그러려니 하지만 그날은 딸도 한 공간에 있는데 그 선사 시대 동굴 같은 방에서 도대체 왜 불도 안 켜고 있느냔 말이다.

무슨 프레스코 벽화같은 거라고 그릴 생각인 걸까.

"합격아, 그러다가 눈 더 나빠지겠어. 불을 켜야지,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있어?"

내가 당장 불을 켰다.

"불 안 켜도 돼. 무드등 켰어."

무슨 무드등이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손바닥보다 더 작은 그것이 밝으면 얼마나 밝다고.

밤이 됐으면, 어두워졌으면 불을 켜야지, 설마 이미 누워버려서 불 켜려고 일어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가?

딸은 직장인의 머리맡에 앉아있고 직장인은 계속 누워서 딸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대화할 때는 좀 앉아서 하면 안 돼? 그게 어려워? 서로 쳐다도 안 보고 지금 뭐 하는 거야? 거기다 불도 안 켜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것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이다.

그래도 부녀가 어떤 주제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토킹 어바웃 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고구마를 쪄서 갖다 줬다.

"합격아, 밤고구마 먹고 싶다며? 엄마가 쪘어, 아빠랑 먹어 봐."

호박 고구마도 아니고 '밤고구마'씩이나 되는데 설마, 그것을 누워서 먹으리라고는(물론 평소에도 그런 묘기를 자주 보이긴 했지만) 생각도 못했다. 딸도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모습이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 직장인도 나와 같은 마음일 줄 알았다.(물론 나만 단단히 착각한 셈이고 말이다.)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직장인은 용케도 누운 자세 그대로 고구마 껍질을 까서 입에 넣었다.

멀쩡히 앉아서 먹어도 목이 메고 자칫하면 체할 수도 있는데 그 직장인에게는 도대체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

역시 능력자야.

"좀 앉아서 먹지. 재주도 좋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 보기에 안 괜찮다.

내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은 좀 아니다, 싶었다.

물론 나만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땅콩도 먹어 봐, 합격아."

땅콩 한 줌을 들고 부녀가 있는 문제의 그 방으로 갔다.

여전히 직장인은 누워서 요양 중이셨다.

나의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고 여전히 누운 자세에서 그 콩알만 한 것을 흡입하셨다.


"인간적으로 애들이랑 대화할 때는 방에 불이라도 켜자. 그리고 먹을 땐 좀 앉아서 먹는 게 어때?"

아이들은 본 대로 따라 배운다던데,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던데.

만에 하나 물도 누워서 흡입하는 그런 묘기라도 부릴까 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나는 조용히 문들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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