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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14. 2024

아버님, 많이 지나치셨어요

그건 저희를 위하는 게 아니었어요

2024. 2.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방이 너무 더워서 잠을 못 잤어."

"그냥 하루니까 그러려니 해. 우리 집 아니잖아. 왜 그렇게 예민해?"


설 전날 시가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올 때의 일이다.

불평하려는 게 아니라 더워서 덥다고 말했던 것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방을 펄펄 끓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말을 하려는 것뿐이었다.


"오늘은 할머니랑 우리 손지들이랑 같이 잘까?"

어머님이 아이들에게 긴급제안을 했다.

"어머님, 애들 얌전히 안 자요. 사방으로 굴러서 어머님 못 주무실 거예요. 저도 같이 자기 힘들어요."

"괜찮다."

"진짜 애들이 온 방을 헤매고 자요."

"그러면 좀 어떠냐. 할머니랑 같이 자자."

그냥 하는 말이 절대 아닌데, 특히 아들은 정말 심하게 구르고 뒤집고 발로 차고 난리도 아니다.

어머님은 두 아이들과 같이 주무시고 싶어 했지만 아들은 그 제안을 거절했고 딸만 수락했다.

어머님이 내심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으나, 어머님 마음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다리가 아프신데 자다가 아이들이 어머님 다리라도 차고 그럴까 봐 나는 그냥 어머님이 혼자 주무셨으면 했다.

"우리는 다른 방 가서 잘까? 당신 불편하잖아."

그 양반이 내게 소곤댔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당연히 불편하지.

내 집도 아닌 것 자체가 불편한데 어머님과 같은 방에서 자는 건 무리였다.

그리하여 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멤버가 한방에 투입됐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보일러 틀어 놓을 걸 그랬다. 방이 추울 텐데."

빈 방이라 계속 보일러를 틀지 않았으니 쉽게 따뜻해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어머님은 걱정이셨다.

"틀어 놓으면 따뜻해지겠죠. 그렇게 추운 날씨 아니니까 괜찮아요, 어머님."

"그래, 보일러도 틀고 전기장판도 같이 틀어라. 추울 거다."

그 양반이 출동했다.

시골집이라 밖으로 나가서 일일이 해당 방 보일러를 열어 줘야 한다.

그런데, 정말 어머님 말씀대로 보일러를 튼 지 한참이 지나도 방이 냉골이었다.

어떡한담, 이대로는 못 잘 것 같은데.

"방이 좀 따뜻해졌냐 어쩌냐?"

"이제 틀어서 아직은 안 따뜻한데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어머님은 방이 안 따뜻해질까 봐 신경 쓰셨다.

그 양반도 계속 들락날락하면서 방을 살폈으나 보일러가 고장 난 게 아닌가 싶게 너무 냉기가 돌았다.

괜히 그 방에서 잔다고 했나, 어머님이 계속 걱정하시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추운 방에서 잘 자신도 없었다.

정 안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라도 자야지 별수 없겠다 싶었다.

"안 되겠어. 다른 데를 다 잠가보고 그 방만 틀어봐야겠어."

"엉뚱한 방 보일러 틀고 온 거 아니지? 그 방이 어딘지 알긴 알아?"

"다 알지. 기다려 봐."

다행히 방이 금방 데워졌다.

허술하게만 봤는데 용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방바닥이 덥다 못해 너무 뜨거웠다.

"보일러 줄여도 되겠는데?"

"그냥 자. 엄마가 우리 추울까 봐 계속 신경 쓰시는데."

"이젠 꺼도 따뜻할 것 같은데 뭐 하러 이렇게 덥게 자. 이러다가 우리 아들 다 데겠다. 너무 더워도 오히려 잠 못 자."

아닌 게 아니라 방바닥은 손도 못 대게 뜨거웠다.

"그럼 장판이라도 끄자. 둘 다 틀 필요는 없잖아."

"그냥 자, 우리 집도 아닌데 하루만 좀 참아.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

뜨거워서 못 참겠으니까 하는 소리지.

"이미 다 데워졌는데 계속 뜨겁게 있을 필요가 없잖아. 뭐 하러 쓸데없이 낭비를 해?"

정말 낭비 수준이었다.

내 느낌에는 한증막에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좀 줄여 봐. 나가기 귀찮아서 그러지?"

내 기준에서는 게으른 사람이니 한밤 중에 밖에 나가서 보일러를 조절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라고 강력히 의심됐다.

결국 내 등쌀에 그 양반은 보일러를 조절하고 들어와 이내 코를 골았다.

나는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들라치면 코 고는 소리에, 게다가 여전히 방이 뜨거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이렇게 뜨거운데 어떻게 잠이 들 수가 있지?

물론 남편은 나보고 예민하다고 타박만 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긴 들었고 6시 반에 다시 깼다.

그 양반이 잠들고 난 후 바로 전기장판은 꺼버렸는데 그래도 방이 뜨거웠다.

보일러도 줄였다는데 밖에서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고장이 난 건가?

아침에 그 양반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아빠가 우리 추울까 봐 다시 보일러 세게 틀어놓으셨나 봐. 내가 밤에 줄여놨었는데. 평소엔 아끼느라 많이 틀지도 않으실 텐데."

어머님도 나를 보자마자 물으셨다.

"방 안 춥더냐?"

계속 걱정이셨나 보다.

"어머님, 방이 따뜻해서 푹 잘 잤어요."

며느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어머님과 진지하게 그날의 보일러 사건에 대해 토킹 어바웃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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