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Feb 17. 2024

제발,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 백만 개 잡기

2024. 2. 10.

< 사진 임자 = 글임자 >

"평소에 차에 관심 좀 가지고 관리 좀 해. 운전을 하면 차에 대해서도 알아야지. 당신은 너무 아무것도 몰라. 운전만 하면 다가 아니라니까."


그 양반에게 종종 듣는 훈화 말씀이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긴 했는데 올라갈 줄을 몰랐다.

너무 최대한으로 내려 버렸나?

하필이면 왜 이장님이 동네 입구에서 차를 세우셔가지고는...


아빠와 병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장님이 차를 불러 세우셨다.

아빠가 급히 조수석 창문을 내리셨다.

그것도 완전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하까지.

시동을 끄고 차 문을 잠그기 전에 창문을 다시 올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한 번 내려간 창문이 올라올 줄을 몰랐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몇 번은 무사히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좀 달랐다.

시동을 끄고 다시 켰다가 해 봐도 안되고 차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열었다 닫았다도 해 보고 살살 달래면서 수 십 번을 시도해 봐도 창문이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어쩌지?

그 양반에게 이실직고해야 하나?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보니 심란했다.

창문 한쪽이 아예 없다시피 하니까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은 물론 사람도 그 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차 안에서 자야 하는 건가? 이 사실을 알면 누가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절대 조용히 안 넘어갈 텐데.

그 양반이 차를 관리해 주고 계신다.

창문이 안 올라온다고 하면 분명 한 소리 들을 거다.

"차를 얼마나 험하게 쓰길래 그래? 창문도 좀 살살 내리지 얼마나 막 했으면 창문이 안 올라와? 가만 보면 당신은 넘 차를 험하게 쓴다니까."

라고 분명히 저렇게 말할 것이다.

저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한다지 아마?

그 양반이 퇴근하기 전에 사건을 수습해야 했다.

어떻게든지 내 선에서 끝내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봐도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참, 이럴 때 필요한 게 '너튜브'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당장 검색을 하고 영상을 뒤졌다.

다행히 관련 영상은 넘쳐났다.

희망이 보였다.

사람들이 올린 영상은 너무 허망했다.

설마 저런 방법으로 해결이 된다고?

먼저 창문 내리는 버튼을 이쑤시개로 청소부터 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 뭘 뿌리라고 했는데, 마침 그 양반이 집에 사 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같았다.)

역시 하늘은 날 돕는구나.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똑같은 거니까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겠지?

아뿔싸, 그런데 집에 이쑤시개가 없다.

그럼 뭘로 해야 하지?

갑자기 암담해졌다.

그냥 막무가내로 그것(?)부터 뿌려 봐?

현관 서랍장을 뒤졌다.

그러나, 그것은 온데간데없었다.

분명히 내가 그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상하다? 그래서 귀신이 곡을 하나 보다.

이 양반이 이럴 줄 알고, 나 골탕 먹으라고 없애버렸나? 얼토당토않은 억측까지 다 했다.

걸핏하면 여기저기 칙칙 뿌리던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는데 나 몰래 어디 숨겨뒀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버렸다.

"이런 거 쓸데없이 뭐 하러 계속 가지고 있어? 안 쓴 지 한참 됐는데."

그때 왜 내가 그렇게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냥 놔둬. 혹시 필요할 때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그대로 둬."

"다 썩었겠다. 너무 오래돼도 아무 효과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철천지 원수 보듯 하면서 기원전 3,000년 경에 해치워버린 생각이 났다.

그 양반 말이 틀린 거 하나 없구나.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놔둘 것을.

그 양반이 퇴근하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데 이쑤시개도 없고, 그것도 없으니 이를 어쩐담?

그냥 눈 한번 질끈 감고 자수할까?

자수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 뒤에 이어질 잔소리가 끔찍했다.

"당신처럼 차에 무관심한 사람도 없을 거야. 사람이 운전을 하면 기본적으로 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지. 너무한 거 아냐?"

1박 2일은 잔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나는 다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도 듣는 사람 참 기분 나쁘게 말하는 용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창문이 올라간다고 사람을 유혹해 놓고 실속 있는 영상이 처음엔 없었다.

이쑤시개가 없으면 미용붓으로, 나는 팩을 할 때 쓰던 붓으로 먼지를 제거해 볼 생각이었다.

도구로 무엇을 쓰든 먼지만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선?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다지 아마?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 들여 붓으로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창문 버튼을 눌렀을 때 '까꿍' 하고 올라오던 그 창문을 보았을 때의 그 환희심이란!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가 있는 거였나?

너무 쉬워서 허망하기까지 했다.

그럼 결국 먼지 때문이었나?

(솔직히 잘은 모른다.)


어쨌거나 문제는 해결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그 양반에게 숨길 것은 더 이상 없었다.

퇴근한 그 양반에게 감히 아는 체를 다 했다.

"창문이 안 올라갈 때 어떻게 하는지 알아? 모르지? 절대 모를 거다. 그게 기본적으로 먼지가 문제야. 우선 먼지를 제거하는 게 중요해. 이쑤시개를 써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붓이 더 효과가 좋아. 몰랐지? 참고해. 그렇게 해도 안되면 거기에 뿌리는 거 있어. 그것까지 뿌리면 직방이야. 혹시 창문이 안 올라가면 그렇게 해 보셔."





작가의 이전글 공무원 가성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