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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2. 2024

이파코초, 이라또 그리고 면라

들켰다

2024. 2. 20.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근데  '이라또'가 뭐야?"

아들이 갑자기 그 해괴망측하고도 느닷없는 단어의 출현에 급질문을 했다.

그 양반과 주고받은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그런 말이 있어? 처음 들어 보는데?"

아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으응, 그게..."

나는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 엄마, 도대체 이라또가 뭐야? 무슨 뜻이야?"

딸도 거들었다.

남매가 2대 1로 저돌적으로 나오니 나도 이쯤에서 '이라또'란 말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하지만 곧바로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그 후폭풍을 나 혼자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나 혼자만 감당하기엔 좀 억울했다.

그 양반도 출동해야만 한다.(고 나 혼자만 조급해졌다.)

그러나, 그 양반은 어젯밤도 포만감과 함께 진작에 하루 일과를 접으시고 안정을 취하느라 방에 들어가고 그 자리에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그 요상한 그 말을, 내가 만들어 낸 그 말을(엄밀히 따지면 내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지만, 단지 나는 활용했을 뿐이다. 이런 걸 융통성을 발휘했다고 한다지 아마?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말해놓고도 과연 이걸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지 자신도 없다.) 어떻게 하면 남매가 조금이라도 덜 어이없어하며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니까 그 말은,

한마디로 '또라이'다.

유사어로는 '돌아이' 내지는 '돌+I'가 있고 말이다.


'라이또'의 기원을 찾아서~

그 양반과 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최대한 험한 말이나 아름답지 못한 말, 비속어나 불쾌한 말 내지는 &%#%^&* 이런 말들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그리고 나는 최대한 그러려고 하긴 했지만 그 양반도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같이 살아온 정을 생각해서 그 양반도 같은 마음이려니 하면서 살짝 끼워준 거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만 살아지던가 말이다.

그 양반이나 나나 밖에서 볼꼴 못볼꼴을 보고 온 날이면, 특히 정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났던 날이면 흥분하며 그 단어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엔 남매를 의식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을 듣고 우리도 화들짝 놀랄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짠 것이다.(물론 그것도 나 혼자만)

"오늘 이라또 만났어."

물론 시작은 나로부터였다.

"이라또가 뭐야?"

"이라또가 이라또지 뭐긴 뭐야? 생각해 봐. 남들은 다 아는데 설마 몰라?"

한참 어떤 이상한 행동을 했던 이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으므로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또 나만 생각했다.)

하지만 눈치도 없는 그 양반은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 것이다.

"또 무슨 이상한 말을 하는 거야?"

"그 말을 거꾸로 해봐."

"또라이?"

"맞았어! 앞으로 또라이는 라이또야 알겠어? 명심해!"

그리하여 그 말이 탄생한 것이다.

남매에게 들키지 않고 그 상황에 반드시 필요한 그 단어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넘쳐 나는 그런 발상을 한 내가 다 대견할 지경이었다.

그 후로 심심찮게 그 단어는 우리 입에 올랐고 점점 그런 식으로 다른 단어로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광개토 대왕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듯이 말이다.

"이파코초 사 올까?"

"면라 먹을래?"

"아, 림크스이아 먹고 싶다."

등등.

그 와중에 그 양반과 결혼하기 전 단 한 번도 '면라 먹고 갈래?'라는 발언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아무 말 대잔치'라고 한다지 아마?

그중 단연 난도가 높고 감히 남매가 짐작조차 못할 단어는 '림크스이아'일 거라며 나 혼자 뿌듯했다.

이라또에 비하면 저런 단어는 아주 몹쓸 단어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안 주려고(몸에 좋은 것은 아니니까,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들만 속 빼놓고 그 양반과 둘이만 먹기 위해서였다.)

저 세 단어는 최근 남매가 눈치를 채고 이젠 본인들이 대놓고 우리에게 저렇게 말하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초등 남매가 '이라또'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엄마, 도대체 이라또가 뭔데 그래?"

"응, 그게 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야.(물론 우리 집에서만)"

"그래? 그런 말은 안 들어봤는데?"

"응, 많이는 안 써, 사람들이.(당연하지 우리 집에서만 쓰니까)"

"이상한 사람이 이라또야? 그냥 한번 찾아봐야겠다, 누나 우리 검색해 보자."

아뿔싸, 이제 아들의 하루 일과 중 8할이 검색이 되어버린 것을 잠시 내가 망각하고 있었구나.

당장 아들이 태블릿을 켜더니 검색을 시작하는 눈치였다.

"엄마,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단어는 없는데?"

응, 아마, 없겠지, 있어서는 안 되겠지.

"혹시 다른 말을 엄마가 착각한 거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얼마나 내가 애용해 마지않던 말인데.

"더 찾아보자 누나, 기다려 봐."

가끔 집요한 면이 있는 아들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엄마, 드디어 찾았어!"

뭐라고? 그걸 찾아냈다고? 드디어 실체가 드러나는 건가?

진작에 그냥 자수하고 광명을 찾을 것을 그랬나?

순진한 아이들에게 애먼 소리만 한 건 아닌가 몰라,라고 오만가지 생각이 드려는 찰나 아들이 위풍당당하게 태블릿을 두 손으로 들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나 알아냈어. 작가잖아. 이라또라는 작가가 있는데?"

뭐라고?

나는 정말인지 찾아보지 않았지만 아들 말대로 그런 작가가 있다면 혹시 그 사람도 일부러?

(물론 사실확인 불가다.)

그러나 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 누나와 한참을 속닥속닥 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치며 내게 달려왔다. 그것도 제 누나를 원 플러스 원으로 동행하고 말이다.

"엄마, 우리도 이제 다 알아. 또라이지 또라이?"

그 정확한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두 아이들은 낄낄대며 한참을 고소해했다, 어떻게든 그 비밀을 지키려는 엄마 앞에서 통쾌한 웃음소리가 쉽사리 그칠 줄을 몰랐다.


예로부터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가려 마시라 하지 않았던가?

찬물은 정수기로 온도를 조절해서 마시면 될 일이고, 바야흐로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 대잔치'도 가려서 할 일이다.

엄마 혼자만 씁쓸하게 회개를 하던 밤이 있었다.

그래도 얘들아, 이파코초, 면라, 림크스이아 이 정도는 양호하지?


* 발행 전 맞춤법 검사를 했더니 '또라이'를 모두 '미치ㄴ ㄴ ㅗ ㅁ'이라고 자꾸만 정정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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