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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8. 2024

그냥 3일 동안 문 잠그고 집에나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마

2024. 2.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좀 변덕 부리는 거 같네."

그 양반이 말했다.

"아니, 변덕 부리는 거 같은 게 아니라 변덕 부렸어."

꼭 나한테 확인을 받아야 속이 시원하겠수?


"이번에 3일 쉬는데 어디 여행이나 갈까?"

여태 아무 말이 없다가 월요일에 말을 꺼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쉴 수 있는데, 벌써?

남들은 몇 달 전에 다 예약하고 일정 잡고 스케줄 다 짰을 텐데 벌써?

시간적 여유는 3일 정도밖에 없는데 벌써 이렇게 제안을 하시면 어쩌자는 거지?

"그걸 벌써 얘기하면 어떡해? 내일모레가 연휴 시작인데."

이미 나는 하룻밤 묵을 방도 다 나가고 없을 거란 생각에 한마디 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만에 하나 가족 여행이란 걸 계획하고 있었다면, 좀 미리미리 준비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나는 딱히 여행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 양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으므로 집에서 조신하게 책이나 실컷 보고 지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전에도 살짝 몇 번 얘기를 하긴 했으나 평소처럼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려니 하고 흘려 들었다.

"갈 거면 인간적으로 미리 준비를 했어야 하는 거 아냐?"

나라면 최소한 한 두 달 전에 계획을 세웠을 것 같은데.

하긴 사람 마음은 전부 다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게다가 과거 이런 비슷한 일로 안 좋은 기억이 있었으므로 그리 내키지도 않았다.

(과연 그때 그 사건은 가히 자자손손 물려줄 이야깃거리였다.)


"지금 방 구하려면 방이나 있을까?"

나는 방을 구하기 힘들어 보였다.

"알아봐야지."

그 양반에게 일단 의지는 있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뭔가를 계속 찾아댔다.

"빈 방이 있긴 있어?"

"지금 보고 있어."

"과연 남아 있기나 할까? 남들도 다 여행 가려고 진작에 예약해 놨을 텐데."

"찾아보면 있겠지."

"생각해 봐. 우리도 가는데 남들은 안 가겠어?"

"정말 그렇네."

"그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남들은 진작에 방도 다 구하고 계획 세웠을 텐데 우린 며칠 남기고 급히 한다는 거지."

평소에도 약간, 어쩔 때는 심하게 갑자기 일을 벌이는 양반이었으므로 그날도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 집 멤버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번 연휴에 여행을 가자고 입도 벙끗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내가 보기엔 그 양반 혼자 갑자기 근질근질한 거다.

"근데 여행 간다고 해도 별 거 없을 거 같은데?"

느닷없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그 양반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북 치는 소년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북 치고 장구 치는 우유부단한 가장'이야기는 여태 못 들어봤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아니, 별 거 있을 거 같은데?"

나는 기가 막혔다.

가자고 한 사람이 본인이면서 이게 무슨 소린고?

"집이 제일 편하고 좋지."

뭐지?

이게 지금 말이야 말걸리야?

"우리 집에서 여행 가자고 말한 사람 아무도 없어. 혼자 갑자기 바람 들어가지고 열나게 알아보더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그 양반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멤버는 여행의 '여'자도 말한 적 없다.


"솔직히 나가면 고생인데, 사람들도 많고 피곤하고."

이 양반이 정말 듣자 듣자 하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남들은 그걸 몰라서 휴일에 여행을 다니고 고생을 하고 그러는 줄 아나?

고생스러워도, 별거 없을 것 같아도, 집만큼 편하지 않아도 다들 떠나는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은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쯤에서 내가 또 출동해야 하는 건가?

이럴지 저럴지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그 양반에게 특약처방이 내려졌다.

"3일 내내 아무 데도 가지 마! 조신하게 집에만 있어. 문 다 걸어 잠그고 절대 밖에도 나가지 말고 하루 종

~일 방콕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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