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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7. 2024

어서 너는 오너라~

2024. 2.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럼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내 이럴 줄 알았지.


오랜만에 아이들과 친정에 간 날 로즈메리 꽃 몇 송이를 보았다.

심은 지 10년 정도 됐으려나?

허브라기보다 이젠 커다란 나무 같다.

과거 한겨울에도 꽃을 피운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젠 너무 나이(?)가 많아서 은근히 기다리면서도 어쩌면 이젠 꽃을 못 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시치미 뚝 떼고 있더니 올해도 역시 잊지 않았군.

딸이 태어나던 해에 화원에서 작은 로즈메리 허브를 하나 사서 친정집에 심었다가 조금 키운 뒤에 가지를 꺾어 여기저기 분산시켜 심은 것 중의 하나였다.

"합격아, 엄마가 너 태어났을 때 사서 심은 건데 벌써 이렇게 자랐다."

"합격아, 로즈메리 향 좀 맡아봐."

"합격아, 로즈메리에서 꽃이 피었어."

"합격아, 로즈메리를 두면 여름에 모기가 안문대."

친정에 가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을 다 떨었다.

처음엔 신기해하기도 하고 나름 자신의 탄생 기념 허브라고 하니 고마워하는 듯도 하더니 해가 갈수록 딸이 시큰둥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엄마는 로즈메리만 보면 그 소리하더라? 에휴~"

그건 말이지, 그 로즈메리를 널 보듯이 해서 그런 거야.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말이야.


이 로즈메리에서 꺾꽂이를 한 것도 5그루가 넘게 지금 사방에 잘 자라고 있다.

로즈메리는 생각보다 생명력도 강하고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키울 수 있는 허브였다.

아니, 힘을 들일 필요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뿌리만 잘 내린다면 처음에 심고 나서 물 관리만 잘해준다면(그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긴 하다) 별 탈 없이 정착하는 식물 같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그러나 내겐 로즈메리가 많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먹을 수도 없는 거! 그런 거라고 함부로 속단하면 섭섭하다.

물론 먹을 수도 있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생선구이를 할 때 곁들여 먹기도 하고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구워 먹는 고기가 생기면 특히 친정에서 로즈메리를 종종 활용한다.

친정에 오는 새언니들도, 이모님들도, 내 친구들도, 사촌들도 한 움큼씩 꺾어가곤 하는 것이 로즈메리다.

달리 줄 게 없는 나는 다짜고짜 로즈메리만 꺾어대는 것이다.

친정 동네에 로즈메리 동산이라도 만들 기세로 장마철이면 꺾꽂이 하기 바쁘다.

안톤 체호프에게 '벚꽃동산'이 있다면 나에겐 로즈메리 화원 정도랄까?

아는 사람을 모두 초대해서 분양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상대방에게 의향을 먼저 정확히 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인들에게 종종 부모님이 농사지은 것들을 나눔 할 때도, 특히 로즈메리 꽃이 피면 완두콩이나 양파나 상추 위에 살포시 몇 줄기를 올려 보내주기도 한다.


이러다가 씨까지 수확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꽃을 본 지도 몇 년 됐는데 내친김에 씨까지 받아 볼까?

허브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허린이는 올해도 의욕만 마구마구 넘쳐나고 있다.

봄은,

그렇게 살짝,

욕심을 부려봐도 괜찮은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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