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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6. 2024

알 수 없는 민원인 마음

한오백년 전에 있었던 일

2024. 2. 26.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전 글의 병원에서의 일은 돌이켜 보면 과거 직장 생활을 할 때의 모습과 좀 닮았다.

좀 불친절하게 느껴졌고 다소 느닷없는 반응이었지만 어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일을 보러 온 민원인에게 다짜고짜 '불친절하다'는 황당한 말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이 떠올라 병원에서 굳이 그 직원에게 이렇다 저렇다 감정적인 말은 안 했던 것이다.

불친절하다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수치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입을 해서 따져 보고 싶을 지경이었으나 내 경험상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당히 상대적인 거였다.


언젠가 자신의 번호표 숫자가 창구 쪽에 표시되니 다짜고짜 인상을 쓰면서 퉁명스럽게 민원 처리를 요구한 민원인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사람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기분이 상한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는데 얼굴을 구기면서 어떻게든 내 행동이나 말투에서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며 무턱대고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라고 대뜸 시비조로 나오는 이들을 많이 만났었다. 한 둘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하는 편이고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는 사람인 나는 공무원이었으므로 과하게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게(하지만 애초에 뭔가에 불만을 품고 온 사람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상대를 불친절하다고 단정 지어 버리기 일쑤였다, 경험상) 그냥 내 담당 업무를 할 뿐이다.

밑도 끝도 없이 불친절하다고 들이미는 민원인에게 잘못한 것도 없이 그의 말에 휩쓸려 무조건 사과할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윗분들의 지시에 억울하지만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다. 공무원의 슬픔이자 굴욕이다 어쩔 때는. 막무가내인 민원인보다 더한 이가 윗분들일 때가 있다.)

신분증을 줄 때부터 신경질적인 말투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내게 큰소리를 쳤다.

"근데 왜 이렇게 불친절해? 이렇게 불친절하게 해도 돼? *&%#$@%^#@$"

사무실의 직원들은 물론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민원인들도 다 놀라서 쳐다봤다.

내가 그 사람에게 불친절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친절하게 대해도 본인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불친절하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감히 내가 불친절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공무원이?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하려고?

이미 그런 일에는 넌덜머리가 난 지 오래였다.

놀랍다기보다 나는 그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비슷한 유형의 민원인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리 대수롭지도 않았다.

솔직히 '오늘은 운이 나쁘구나.'그 정도였다.

나는 단지 그냥 평소의 말투, 평소의 목소리, 평소의 태도로 그 민원인을 대했을 뿐인데 괜히 본인이 딴 데서 기분 나빠서 와서 여기 와서 엉뚱한 말을 한다고밖에.

내가 그 민원인에게 반말을 하기를 했나 욕을 하기를 했나 흘겨보기를 했나 서류 발급을 안 해주기를 했나.

도대체 무슨 근거로 불친절하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도 없긴 하다.

나는 담당자로서 민원인이 요구한 서류를 발급해 주면 그만이지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반응해 주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때는 내가 직원의 입장이었으니까 나도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는데 최근 병원 일을 겪고 나니 불현듯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내가 그 병원 직원에게 불친절하다고 한 마디 하는 순간 상대방도 과거의 나처럼 느닷없다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신입사원인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이제 갓 출근한 사람은 제때 안내를 못해 줄 수도 있고 정확한 안내를 못할 수도 있고 알려 줘야 할 시기를 자칫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신규자 때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과거 신규자 때 나는 많이 허술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라지만 '역지사지'라는 말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막상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내 생각만 한다. 나 역시 병원에 있던 내내 내 생각만 했고 말이다, 사람이니까.

상대방의 태도에 굳이 재깍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섣부르게 행동하면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정도로 그만이다.

크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일도 아니고 거기에 얽매어 전전긍긍할 일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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