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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5. 2024

태도와 착각 혹은 오해

남의 속은 모른다

2024. 2.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지금 파업 중이라 진료 예약은 못하시고, 파업이 끝났다는 뉴스 나오면 그때 다시 예약해 주세요."


대학 병원에 가려고 진료 예약 관련 연락처를 남겼더니 다음날 아침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연락이 왔다.  한창 지금 흉흉한 시국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당장 일이 어그러지자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다. 또 다른 병원을 알아봤고 다행히 예약을 할 수 있어서 기존 병원에 요양급여 의뢰서를 발급받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그랬는데...


필요 서류를 챙기려고 당장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의뢰서는 며칠 걸린다고 하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다.

원래 그렇게 며칠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은 '선생님이 직접 작성하셔야 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당연히 담당의가 직접 작성하는 거지 남이 대신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아마 그때부터 일이 꼬인 것 같다.

이상하다? 전에도 이런 경우가 다른 병원에서 몇 번 있었는데 다들 바로 처리해 줬던 것 같은데 이해되지 않았다. 병원 방침인지 법에 당장 해 줄 의무는 없다고 나와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쪽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당장 해 달라고 떼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받은 문자를 보며 필요한 서류를 말해줬는데 '알겠다'거나 '신청이 됐다'거나 이런 말이 전혀 없었다.

"그럼 서류가 다 신청된 건가요?"

라고 묻자 그때서야

"네,  다 신청됐어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CD도 다 신청된 건가요?"

한번 더 확인차 물었다.

"그때 안 찾아가셨어요?"

이러는 거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안 가져간 것 같아서 확실히 기억 안 난다고 했다.

"그때 드렸을 텐데, 안 가져가셨어요?"

같은 말만 했다.

일단 서류 신청은 됐다고 해서 영상의학과 쪽에서 직접 확인을 해보려고 갔더니,

"먼저 구워달라고 요청하셔야 해 드려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는 요청한 적이 없으니 안 가져간 게 확실하다.

다시 그 직원에게 가서 말했더니

"처음 OO 병원에서 가져온 CD 안 가져가셨어요?"

이 말을 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내가 방문한 그 병원에서의 내 모든 자료이지 그전에 갔던 병원 자료를 지금 거기 가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닌데, 상식적으로 엉뚱한 병원 가서 다른 병원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CD는 당연히 가져갔죠. 지금 여기 이 병원 CD를 말하는 거예요."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나려고 했다. 물론 화 낼 일은 아니다. 서로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니까. 착각했나 보지.

마음 같아서는 '기존 병원 CD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요?'라고 하고 싶었다.

"1층 가서 말씀하세요."

했다.

"그럼 나머지 자료는 의뢰서 찾으러 올 때 그때 한꺼번에 찾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의뢰서는 며칠 걸린다 치고, 나머지는 지금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CD도 신청만 하면 당장 구워주는 마당에.

그때서야 그 직원은 물었다.

"뭐뭐 필요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이렇게 묻는 것이다.

아까 분명히 신청 다 됐다고 했으면서, 내가 문자 보면서 읽어주기도 했고, 그래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서 신청이 다 됐냐고 다시 한번 확인까지 했을 때 다 됐다고 말한 지 10분도 안 지났다.

그럼 아까 '다 신청 됐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귀찮아서 빨리 보내버리려고 그런 건가?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꿰어지면 이렇게 예기치도 못하게 일이 꼬여 버린다.

그 직원이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말투며 행동 하나하나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하나.

이젠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나도 평화로울 수는 없다.

"약 처방전도 나중에 다시 와서 그때 받나요?"

몰라서 물었다.

"1층 수납하는 데 가서 받으세요."

내가 먼저 묻기 전에는 먼저 알려주는 게 없다.

병원에 가면 기본적으로 묻기도 전에 안내를 먼저 다 해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원래는 알려줬는데 깜빡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그 병원에서는 원래 그렇게 하는지도 모른다.

병원마다 다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날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병원 입장)은 자신이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사소하게 느껴지는 일도 잘 알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모른다.

수납 창구의 직원은 평소처럼 날 대했지만 2층에서 살짝 마음이 불편했던 내게 그는 완전 천사처럼 느껴졌다.

사람 마음이 이리 간사하다. 창구의 직원은 평소대로 그냥 보통의 말투, 보통의 안내, 보통의 일을 했을 뿐인데 아주 상냥하게 느껴지는 거다.


2층 직원은 원래 그냥 말투가 그런 사람인 건가?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과민반응한 건가?

하긴 전에도 그 직원에게 질문을 하면 대꾸도 잘 안 하긴 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 직원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그 직원에게 말을 안 좋게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부탁만 했는데, 솔직히 화도 나려고 했는데, 몰라서 물어본 게 다인데...

어쩌면 나 혼자 예민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직전에 다녀온 병원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친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병원이 더 친절하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다니는 병원의 대부분이 정말 친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병원에서 환자는 거의 약하디 약한 약자 같다.

강자, 약자로 구분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번 일에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는 생각했다.

나도 어쩌면 언제가 남에게 저렇게 행동했을지도 몰라, 의식도 못한 채.

무심코 한 내 행동에 상대방은 기분이 언짢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남을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라 하셨지.

그나저나 아픈 것도 서러운데, 상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환자를 내 가족같이'

병원 곳곳에 붙어 있는 이 말에 나는 더 씁쓸해졌다.

그렇다고 그런 일로 내 기분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니까, 최소한.


내가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고 해서 나도 날이 선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원한은 은혜로만 갚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서로 원한 맺은 사이는 아니지만 말을 하자면 그렇다 이 말이다.

어쩌면 그 직원에게는 나도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내 기분이 언짢다고 해서 화부터 내면 서로  감정만 상할 게 뻔하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대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매일 보며 같이 사는 사이도 아닌데 감정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한마디만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말투가 조금 무미건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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