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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4. 2024

그럼 미역국은 절대 안 끓여야지

극성 엄마 아닌 엄마의 처방

2024. 2.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일 아침은 뭘로 할까?"

"그냥 먹던 대로 하면 되지."

"미역국은 절대 끓이면 안 되겠어."

"왜?"

"너희 시험 보잖아."

"우리 시험이랑 미역국이랑 무슨 상관인데?"

"자고로 시험 보는 날 아침은 미역국을 안 끓이는 거야."

"엄만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어? 지금이 어느 땐데?"

"어느 때고 저느 때고 아무튼 미역국은 절대 끓이면 안 되겠어."

"하여튼, 엄마는 알아줘야 해."


아니 엄마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너희가 '특공무술, 경호무술'씩이나 심사 보러 가는 날인데 엄마가 돼서 그 미끄덩거리는 그것을 굳이 끓일 필요는 없잖아?


"엄마는 가만 보면 진짜 그런 미신 잘 믿더라."

딸이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걸 다 믿는' 엄마를 도대체 어느 시대에서 온 사람인고?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미역국은 생일날 먹는 거 아니야?"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옆에서 잠자코 있던 아드님도 원 플러스 원으로 나섰다.

"보통 생일날 많이 먹기는 하는데 평소에도 잘 먹지, 근데 특히 시험 볼 때는 가급적 사람들이 안 먹어.(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확실히 안 먹어.)"

"엄마,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미역국 먹는다고 설마 우리가 심사에서 떨어지겠어?"

딸은 계속 반박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아무리 미신이라도 우리 아들 딸한테 안 좋을지도 모르니까 가급적 그런 건 안 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건 내 진심이다.

어느 엄마가 그렇지 않을까.

"엄마, 걱정 마. 돈을 그렇게 많이 냈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아들이 다짜고짜 심사비를 언급했다.

"아니, 우리 아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들으면 심사비 냈으니까 무조건 합격시켜 주는 줄로 오해하겠다. 돈을 많이 냈다고 해서 무조건 합격시켜 주는 거 아니야. 다른 모든 시험도 마찬가지야.(하지만 과연 다른 모든 시험도 그럴까 싶긴 했다, 솔직히. 그러나 초등 남매 앞에서는 원칙적인 말만 해야 한다, 당분간은, 그들이 이 세상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엄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내가 합격할 자신이 있고 그만큼 실력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미역국하고 상관없이 말이야."

아드님이 좀 전의 제 발언을 급히 수정했다.

"아, 그런 거였구나. 우리 아들이 합격할 자신 있다 이거지? 그럼 우리 아들은 합격할 거라고 믿겠어. 그리고 우리 딸은 태명부터 '합격이'였으니까 당연히 붙을 거야. 엄마가 어떻게 지은 태명인데."

이젠 나는 딸의 태명까지 소환했다.

"하여튼 엄마는."

합격이가, 그러니까 딸은 걸핏하면 여기에 이것을 붙이고 저기에 저것을 붙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해 안 해도 돼, 일단 합격만 하면 돼, 둘 다.


둘 다 특공무술과 경호무술을 각각 심사 보는데 거금 총 68만 원이 들었다.

외벌이인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면 적잖은 지출이다, 확실히.

"그래, 심사비 말 나온 김에 잘 생각해 보자. 거금을 들여서 심사 보는데 한 번에 붙어버려야겠지? 너희도 용돈에서 보탰잖아. 한 번에 끝내버리자, 알았지 얘들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봐. 다시 또 그 금액을 내고 심사 보러 가야 해. 이왕이면 이번에 두 가지 다 붙으면 좋겠지? 어떻게 생각해?"

말로는 미역국을 핑계 삼아 어떻게들 남매가 합격하기를 바랐지만, 사실 만에 하나라도 불합격을 한다면 그 후폭풍이 아찔했다.


별 일이 없으면 무난히 합격하겠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엄마는 신빙성도 없어 보이는 미역국 타령을 한 것이다.

얘들아, 엄마는 말이야, 너희가 합격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거야.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야. 아니할 수 없는 일도 해 낼 거야. 해 내고 말겠어!

여자는 약하지만 '심사를 앞둔 남매의 어머니는 강하다'는 그 유명한 말 너희도 들어봤으렷다!

너희에겐 이 엄마가 있어. 명심해!

가만, 그런데 남매가 심사 보는 동안 108배라도 연속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새벽 기도라도 바짝 며칠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가?


이렇듯 나는 전혀 극성 엄마는 아니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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