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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14. 2024

다만 충동구매에서 그를 구하소서

구제 불가능

2024. 3.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럼 당신 것도 하나 사 줄게!"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당신 것도'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들으면 세상에서 그렇게 자상하고 인심 좋고 씀씀이도 후한 남편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그 말.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는 최근 몇 년 간 물건 구매가 확 줄었다.

수입이 없으니 당연히 그래야 마땅한데, 이런 현상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소비를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거였구나.

굳이 많은 것을 살 필요는 없었구나.

물건을 안 사다 보니까 안 사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는 나는 정말 필요한 게 거의 없었다.

솔직히 직장생활을 할 때도 굳이 구매할 필요가 없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가 아프니까, 물건에 치여 사는 게 넌덜머리가 나서, 근본적인 원인은 수입이 없으니까 없어도 되는 물건은 안 사고 몇 번 더 생각해 보고 사게 된다.

그러다가, 그렇게 한동안 고요한 속세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이거 괜찮다. 우리 아들 학교 가고 없을 때는 엄마가 잠깐 써도 될까?"

감히 아들의 무선 이어폰을 탐냈던 게 화근이었다, 그것도 프로 쇼핑러 그 양반 앞에서.

"응, 당연히 되지. 나 안 쓸 때는 엄마가 써도 돼."

"고마워, 역시 우리 아들이야."

그때 모자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한 성인 멤버가 있었으니,

"얘들아, 아빠가 엄마 것도 사줘야겠어. 당신 것도 하나 사 줄게. 내가 또 하나 사 줘야지."

아니, 제발, 사지 말아 줘,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지 마.

"나 굳이 없어도 되는데?"

초장에 불길을 잡아야 한다.

"이참에 하나 사 줄게. 그거 얼마나 한다고."

갑자기 인심이 후해지신다.

하지만 난 정말 진심으로 굳이 그것을 사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아니야. 사지 마. 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그리고 써보고 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데 무작정 사면 어떡해. 생각보다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잠깐 쓰는 거니까 그렇지만."

"이 사람이 사준다고 해도 그러네. 나 주문한다."

아니, 제발 주문하지 말라니까.

난 몸에 뭔가 달고 차고 하는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지도 팔찌도 목걸이도 귀걸이도 하지 않는 나는 아마도 그 이어폰을 사준다고 해도 한 두 번 잠깐 쓰다가 금방 싫증 낼 예정이었다.(고 나는 강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요긴하게 꾸준히 잘 쓸 수 있는 것을, 이왕이면 물건의 제 값을 하는 그런 것을 사고 싶다, 자자손손 가보로 물려줄 정도까지는 못되어도 주야장천 쓰고 또 쓰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올해도 내년에도 또 쓰고 그렇게 쓰고 싶다.

언제 까지냐면, 예를 들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만에 하나 사게 된다면 말이다. 이런 고급 전문용어로 '본전 뽑는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러나 하루라도 주문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경련이 오는 그 성인 남성은 기어코 그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 과정도 과감히 생략하시고 '바로 구매'를 클릭하셨다.

이틀 후에 그 요망한 것은 기어이 집에 도착했고 콩알만 한 다이아반지 보듯 그 양반은 소중히 내게 인수인계하였다.

"우와, 엄마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응 그래, 그렇겠지.

왜 그런 말이 있잖니 아들아.

너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게야.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무선 이어폰이 더 잘 들리게 보인다'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직접 자기 귀에 꽂아 보고 빼보고 음악을 들어보고 북 치고 장구 치더니, 본인 귀에 맞추겠다고 뭔가 빼고 끼우더니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랑말랑한 실리콘 같은 것이 거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참이나 아들은 그것을 가지고 씨름을 하더니, 그러더니, 지금 내 명의가 되어야 마땅했던 그 무선 이어폰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하루도 못 가서, 택배 온 지 하루도 못 가서 말이다.


아무도 그 양반을 구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확신이 든다, 안타깝게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알라신도 그 어떤 전지전능한 분이라도 '충동구매'에서 그 어린양을, 그 어리석은 중생을 결코 구제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나저나 그 요망한 것이 어디 갔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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