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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12. 2024

선생님 무슨 말씀이라도 해 주세요, 제발요

정말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 보다

2024. 3. 1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선생님은 어떤 것 같아?"

"엄마, 이제 하루 갔어. 하루 보고 어떻게 알아?"

"하긴, 그렇다. 아무튼 학교 잘 다녀 봐."


나는 평소 성미가 급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날은 세상에서 가장 참을성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대답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달까. 하긴 개학하고 겨우 하루 등교했을 뿐인데 잠깐 본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그 어린것들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이들도 그렇지만 부모 입장에서도 학년이 바뀌면 여러 모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냥 학교 다니던 대로 다니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지사항 잘 전달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면 그만인데, 그게 전부인데, 어쩔 땐 엄마 혼자만 지레 걱정이고 조바심도 난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까? 선생님은 어떤 분들을 만날까, 친구들도 잘 만나야 할 텐데, 오만 가지 생각이 들면서 학기 초에는 조금 예민해지기도 한다.

"당신이 학교 다녀? 애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이 그래?"

라고 우리 집 어떤 양반은 종종 나를 타박하지만, 그건 평소에 별 관심 없는 댁 입장이고, 나는 안 그렇단 말이다.

"애들이랑 얘기하는데 좀 끼지 말아 줄래? 나중에 내가 말하면 그때나 얘기해."

할 말이 있어서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시큰둥하게 반응할 땐 언제고, 내가 아이들과 세상 진지하게 토킹 어바웃 하겠다는데 왜 느닷없이 끼어드냔 말이다, 그것도 깜빡이도 안 켜고, 불쑥.

"근데 합격이 너희 선생님은 별말씀 없으셔?"

"무슨 말?"

"뭐 공지사항이라든지 부모님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든지 준비물이라든지 이런 거 사이트에서 따로 안 알려주시는 것 같아서."

"몰라."

개학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딸의 담임 선생님에게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았다.

연락처는 070 번호를 알려 주셨는데, 그 번호를 알려주신 것도 온라인 특정 사이트에서 단체 문자를 보내신 건지 12345678 다른 번호였다. 그러면서 어떤 사이트에 가서 보내 준 초대코드로 가입하라고 하셨다.

당장 가입을 했는데 일주일 내내 그 어떤 소식도 없었다.

내가 제대로 안 한 건가 싶어서 다시 한번 가입하기를 눌렀다.(잘 모르겠으면 일단 한번 더 반복해 보는 거다, 나도 내가 못 미덥다) 처음에 제대로 했는지 이미 가입이 완료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럼 내가 특별히 잘못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내게 뭘 놓쳤나 싶어 여기저기 다 뒤지며 혹시라도 빠뜨렸을지 모를 공지사항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어디를 뒤져 봐도 선생님이 한 글자도 올린 흔적은 없었다.

나는 유난스러운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다.

물론 선생님에게 반드시 그래야 할 의무는 없지만 가입한 사이트에서 '앞으로 전달 사항은 이 공간에서 하겠습니다'라든지 '문의 사항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라든지 하는 그런 말을 기다렸던 나는 개학 일주일이 지나자 안절부절못하게 됐다.

선생님을 귀찮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혹시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나 싶은 것이다.

아들의 경우는 개학 첫날 바로 담임 선생님이 앞로 어떤 식으로 소통하겠다는 메시지를 바로 전달해 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과거 선생님들도 대개 그런 식으로 하셨기 때문에 딸의 선생님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던 거다. 기존과는 약간 다른 상황에 내가 당황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내 예상 시나리오에서 많이 벗어났다.

"근데 왜 합격이 선생님은 며칠 째 아무 소식이 없지? 하다 못해 알림장이나 준비물 이런 거라도 게시판에 올릴만한 것 같은데 말이야."

저녁밥을 먹다 말고 그냥 한 말이었는데 이를 절대 놓칠 리 없는 그 양반이 잽싸게 받아쳤다.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해야 돼?"

"친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연락을 주고받겠다 이런 말 한마디만 해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너무 친절을 바란 건가? 알림장을 따로 쓰는 것도 아니고 공지사항 같은 것도 전혀 없고 학교에서 뭐가 필요한지 이런 게 있으면 게시판에라도 올려 주면 참고가 될 것 같다 이 말이지. 내가 지나친 건가?"

그 양반은 내가 선생님께 너무 친절을 바라는 것 같다고 했지만 학기 초에는 선생님들이 1년 동안 앞으로 어떻게 학급을 운영해 가겠다 이런 식의 알림을 항상 보내주셨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그때를 생각하며 그랬던 거다. 반드시 친절을 원했던 건 아니란 말이다.

"근데 합격아, 만약 엄마가 선생님께 할 말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돼?"

"전화하면 되지."

"선생님도 바쁘고 그런데 갑자기 전화하는 것도 실례잖아. 엄마는 한 번이지만 반 친구들 부모님이 한 번씩만 전화한다고 생각해 봐, 그럼 선생님이 얼마나 피곤하시겠어? 그래서 가능하면 엄마는 문자로 먼저 연락을 할까 했지. 근데 070 번호는 문자가 안 온다던데?"

연락이라고 해봤자 남매의 선생님들에게 일 년 동안 기껏해야 문자나 한두 번 하는 게 고작이지만, 전화보다는 문자가 덜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그랬는데 070 번호는 문자 수신이 안된다고 해서(이건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딸에게 물었던 거다.

물론 학교에 연락할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문자를 먼저 보내고 전화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알려 주신 그 사이트 어디에라도 문의 사항을 남길 수 있는 게 있는지 그런 거라도 알려 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나 혼자만 생각해 오던 차였다.


"선생님께 전화 말고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좀 물어볼래? 엄마가 다짜고짜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그렇잖아. 엄마가 선생님께 연락할 일이 많진 않겠지만 뭐 궁금한 거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야. 선생님한테만 문의할 건데 게시판에 올릴 수도 없잖아."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올해 6년째다.

기존의 선생님들과 좀 다른 방식이라 나는 그저 조금 당황스러울 뿐이다.

제발, 아무 말씀이라도 선생님이 해 주셨으면 좋으련만...

"오늘 혹시 알림장 없어? 준비물도 없어?"

"없어."

아무것도 없단다.

정말 없는 건지, 잊어버린 건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알릴 게 없어서, 단순히 그래서 선생님이 여태 침묵하고 계신 건가?

혹시 이제 내일모레 중학교에 가니까 굳이 알림장이나 공지사항을 통하지 않고 '강하게 키우려는' 의도에서 그러시는 건가?

딸 편에 손편지라도 써서 보내야 하나?


정확한 선생님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다 이유가 있긴 있겠지.

그건 그 선생님의 방식일 테지.

어느 선생님의 방식이 맞고 틀리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거니까.

그저, 딸이 정신 바짝 차리고 학교 다니면 그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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